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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25

풋살이 / 2015.02.25 09:47

새로 입교한 자로도 말지니 교만해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3:6)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의 손가락 중 적어도 3마디 이상은 나를 향하고 있음을 마음으로 배웁니다.
새로 입교한 자 뿐 아니라 평생의 말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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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동마을 돌다리

영화에는 두 로봇이 나온다. 타스와 케이스다. 이 두 로봇은 각각 인간에 의해 정직도와 유머정도가 세팅될 수 있다. 타스는 60%와 70%정도의 유머와 정직도를 갖고 있는 반면에 케이스는 100%정직도로 세팅되어 있다.
이 두 로봇의 외형은 평소 휴머노이드형 로봇에 익숙한 내게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
그야말로 로봇.. 아니 좀 큰 컴퓨터쯤으로 보이는 육면체의 규브로 보이는 외형 때문에 그러하다.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로봇. 영화는 각각의 순수 목적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영화는 우주의 목적이 중력(사랑)임을 알게 해 주었다.

결국 중력(사랑)이 인간과 인간, 별과 별 사이를 끌어 당기는 힘이 됨을 보여준 것이다.
 이 의도적인 단순화는 인간의 목적 역시 사랑임을 알게 하며 영화는 현대의 쇠퇴를 사랑의 창조성과 비교하고 있었다. 

 먼지만 날리는 더이상 곡물을 제공하지 않는 지구는 인간을 밀어내고 있던 것이다. 좀 더 정확히는  사랑이(중력) 없는 인류가 우주 밖으로 도퇴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분명 철학적 시도가 있는 영화다. 그러나 중력(사랑), 그 경륜의 원칙은 단문 메시지와 같이 인간에게 분명하고 단순한 목적을 깨닫도록 한다.  


 "지금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도 이미 영원한 도퇴에 가담하는 중일지 모른다." 아마 이 영화의 분명한 목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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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보라의 순복신앙(4:24~26.87/11:8~10.365)

 

 

십보라의 순복신앙(4:24~26.87/11:8~10.365)

들어가는 말

 감자, 배따라기 등을 썼던 김동인이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훗날 친일 행각이 드러나 그의 책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던 인물이기도 했지만, 구한말 당시 이광수 선생 등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소설 일색이었던 조선 땅에 낭만적이고 조선 특유의 정서를 잘 드러낸 글들을 써내어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가로 평가 받게 되셨죠.

 그 중에서 중등과정에 있는 학생이라면 한 번 정도는 읽어봤을 발가락이 닮았네라는 소설이 있는데.. 어릴 때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저 죄를 짓고 살지말자..정도로 이해했던 것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혀져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영어 이니셜인 M으로 등장합니다. 불특정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 쓴 것으로 보입니다. M은 좋은 직장을 다니는 샐러리맨인데, 청년 시절부터 돈이 생기면 곧잘 홍등가와 주점을 자주 다니던 과거를 가진 남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때 얻은 성병 때문에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는데, 결혼 하고 다음 해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바로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 남자는 아내를 추궁해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과거도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되고, 아내에게 이와 같은 일을 추궁하는 것이 역시 지금의 가정이 깨질 것이 분명하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것이죠. 그리고 날이 차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외증조부를 닮았다고 애둘렀지만, 그의 마음은 가벼울 수가 없었죠. 그러다 문득 그 아이의 발가락을 보게 됩니다. 유난히 가운데 발가락이 긴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발가락과 닮아 있음을 매우 기뻐하게 됩니다. 누가봐도 하나도 닮은 구석은 없지만..  소설은 남자가 자신을 닮은 아이를 끌어 안고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1.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들

 사실 사람들의 마음의 원리도 이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들이 특히 그렇죠. 3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륜이 될 수도 있고, 도둑놈이 될 수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들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먼저 말씀 드린 M이란 남자는 어떻습니까? 분명히 자신의 아이가 아닌데도 그는 이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M이 불임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 친구도 M의 고민과 결정을 존중해주게 됩니다.

 그야말로 살다 보면 오해를 사서면서까지 그 자리에 서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지금 내게 닥친 숙제를 감당해야 할 각 자의 애증과 한계, 삶의 무게가 인생을 이렇게 내몰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 우리는 이런 문제를 감당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신앙인이라는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은혜이고, 그야말로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 것이죠. 그리고 동시에 그 은혜에 걸맞도록 계명을 지키며 살도록 초대되었습니다.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 자신을 돌아보건대 계명은 은혜에 감동하고, 감사해서 지켜지는 성질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최선을 다해 지키도록 노력해야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거나 좀 더 정확히는 하나님에 의해 강요 받는 것 같은 일이 생길 때 하나씩 하나씩 그 중요함을 깨달으며 지켜지게 되는 것인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신앙 여정의 바퀴를 몇 번 돌아야 은혜로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 계명이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2.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그가 결단을 내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 부모와 친척집을 떠나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훗날 신약의 히브리서를 썼던 사람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의한 순종이라고 정리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11:8 내용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여기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순서대로, 또는 매우 유용한 매뉴얼대로, 또 어떤 정답이 있는 것처럼 떠난 것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채 마치 어떤 압박이나 상황에 의해 떠나게 되었다고 풀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결단을 내리도록 하였겠는가? 그야말로 그 동안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삶을 결단하도록 만든 것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가질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믿음의 사람에게는 이 믿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던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4:24~26절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성서는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모세를 죽이려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아니 선택하신 자를 죽이려 하시다니! 방금 계약을 맺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먼저 죽이려 하시다니! 그런데 모세를 따라왔던 아내 십보라의 행동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녀는 돌칼을 가져다가 아들의 표피를 베어 그 남편에게 내 던집니다. 결국 모세뿐 아니라 모든 가족이 할례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할례가 중요한 것일까요?

 모세는 하나님과의 계약 증표로 할례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영원한 증표로서 내가 하나님께 속한, 계약을 맺은 사람임을 의미하는 거룩한 징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내 십보라에게 이와 같은 행동은 매우 이질적이고, 불필요한 행동처럼 보여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아들의 표피를 제거한다는 것은 잘못하면 아들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이죠.

십보라에게 할례는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는 사는 것. 이 완고한 믿음의 행위를 그녀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했던 것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때 비로소 십보라는 남편과 더불어 하나님께 순복하는 신앙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잔인한 분이구나. 그래서 잔인하게도 이런 요구를 하셨구나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은 우리가 잔인하지 않습니까? 잔인한 것은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낸 삶이요. 바로 나요! 내가 여전히 끊어내지 못한 나의 성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강요는 오히려 이런 죄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드럽게)

 순복한다라는 것은 지금은 내가 긍정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지금 내게 닥친 상황과 필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긍정하는 일의 결과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복하는 신앙을 얻기 까지 믿음의 여정, 그 여정의 쳇바퀴를 끊임없이 돌리신다는 사실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늘 안되던 일에서 넘어지거나 늘 같은 마음씀씀이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갈등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자신을 부정해야 믿음의 진보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악한 심보와 갈등과 상처 때문에 이웃과 하나님과 반목하고 있다면 이 시간 십보라와 같이 그 표피를 잘라 하나님께 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비로소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은혜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이 악한 죄의 악순환이 멈춰지기 때문입니다.

 

2.    순복하는 신앙과 구암의 미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앞서 소설을 말씀 드리면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주인공의 숙명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실은 대부분의 인생이 그야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처럼 살다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애증과 상처, 한계에 갇혀 지낼 수 밖에 없음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신앙인은 십보라의 결단과 같이 삶의 필요와 잔인함들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요구에 순복하는 신앙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이 순복의 신앙은 큰 바람 앞에 잠시 몸에 낮추는 삶의 처세와 다릅니다. 십보라는 아들의 목숨을 걸고 불신앙을 짚어 던지도록 하신 강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구원과 자유를 위해 우리 안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 앞에 끊임없이 여러분을 세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공동체가 변하지 않으면 결코 더 나은 믿음과 미래를 얻을 수 없기에 하나님은 똑같은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또 다른 기회를 얻도록 초대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은 남편인 모세를 흔들어 아내인 십보라에게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계명을 지켜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때까지 십보라에게 요구하신 것이며 동시에 나의 나 된 것을 부정하지 않는 한 성도에게 해당될 믿음의 시험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만일 십보라와 같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신앙을 갖추기로 결단한다면 우리 교회의 사정은 지금까지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 누구라도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 마음을 닫아버린다면 잔인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의 의무는 하나입니다. 주께 순종입니다.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명을 지키고, 삶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오늘 이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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