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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위에 세우는 교회

위트 한 마디.. 노부부의 대화(최근에 아내가 자신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인 남편이 아내의 청력을 테스트하고자 큰 소리로 저녁식사가 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현관 앞에서 “여보 저녁 뭐야?” 다음에는 주방 앞에서 “저녁 뭐냐니까?” 그래도 아내가 아무런 대꾸가 없자.. 가슴이 아픈 남편은 걱정스럽게 아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묻습니다. 여보, 저녁식사가 뭐냐니까? 그러자. 아내는 고개를 갑자기 휙 돌리며 쏘아 붙이듯이 말했습니다. “내가 칼국수라고 몇 번을 말했어.”

여러분은 잘 들으시고, 잘 말씀하고 계시는지요? 우리 옆에 분과 인사하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1. 무엇이 자유인인가?

우리 속담에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사람이 태생적으로 물려받는 것이 30%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노력과 환경에 따라 인격과 인생이 정해진다는 결과가 이를 잘 설명해 줍니다.

 

내 말에 거한다는 의미가 그렇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누구를 믿고 따르냐에 따라 내 삶이 새롭게 변화하게 될 것이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는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새로운 삶을 선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에 유대인들은 의아하게 예수님을 향해 대꾸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유”에 관한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한 번도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유대인에게 종이 된다는 것은 모욕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 종이라는 단어는 지금껏 자신들이 외세에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던 점을 미뤄보아 매우 모역적인 말이 될 것입니다. 이들은 항상 외세에 저항하는 거칠고 다루기 힘든 민족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런 자부심으로 살게 된 근거는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신 유대인들의 조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별들과 같이 무수한 자손들을 주실 것이란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거룩한 언약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떠돌이었던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자손들도 언약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더럼대학교수인 제임스 던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유대인은 마땅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임을 지키고자 했던 유대인들의 노력은 나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경건하고 의로운 대다가 로마를 비롯한 주변 나라들이 보기엔 다루기 힘든 매우 피곤한 나라가 분명했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유대인들에게 잘했다고칭찬하기보다“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환기)자 우선, 여기 부모님들이 많으십니다. 이 중에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출석하시는 분만 손들어 보시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 분들 중에서 자녀의 믿음이 나보다 낫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만 손을 다시 손들어 주십시오. ^^ (믿음으로 모두 그리 될 줄로 믿고 두 손 번쩍 들고 아멘해볼까요?)

 

성경에는 처음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으로 백성이 된 조상들이 그 은혜를 갚고자 자청하여 ‘하나님의 의’인 계명과 율법을 짐 지고자 했던 것과 달리 그 다음 세대들은 갈수록 본래 그 믿음에서 벗어나 고집불통이 되거나 외식덩어리에 율법주의자가 되거나 심지어 이런 율법 준수를 통해 로마제국과 부패한 유대왕정을 압박하는 정치세력이 되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남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나중엔 그 쓴 물로 인해 우울증이나 또 다른 죄를 짓게 되는 경우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줄곧 실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고, 왕이 다스리는 나라라면 마땅히 세상에서도 승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실패와 좌절의 굴레에서 나오고자 하여도 도저히 나올 수 없을 만큼 앉은뱅이와 중풍환자처럼 되어 버린 유대인들의 상태를 살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느 유대인의 관심과 달리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중심에 있는 문제점을 바라보도록 다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결국 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예전에 읽은 어느 이야기입니다. 괴물을 사냥하는 한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이 끝내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못해 아니 극복하지 못해서 늘 그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괴물이 되기로 했습니다. 괴물이 되기는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자신의 동료들을 헤친 나쁜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괴물을 미워했고, 이기기 위해 싸움을 연습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사냥꾼이 괴물을 사냥했을 땐 이미 자신도 괴물이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냥꾼에 의해 그 사냥꾼 역시 죽임을 맞이하게 되죠.

 

디모데전서3장6절 말씀입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성경은 이미 여러 번.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지는 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거룩한 자부심이 어느덧 자신들을 가두는 올무가 되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끼리도 정죄가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를 성별해 하나님 앞에 정결한 삶을 드리고자 했던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처음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는지 잊었던 것입니다.

은총으로 시작한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그네요. 티끌이었던 히브리 백성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여 세운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늘 이 여기에서 실패합니다. 모든 것이 내가 이룬 것이 됩니다. 모든 것이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세상을 대적한다고 하면서 세상보다 더 세상 같은 자신을 만나기도 합니다.

신호등에서 빨간불은 가지 말라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은총’이 아닌 자기구별의 정죄와 율법으로 차도를 건너가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매번 실패합니다. 로마제국에 실패했습니다. 마음으로 수많은 죄를 짓습니다. 도무지 누구도 용서할 수 없을 만큼 강퍅해지고, 고집스럽게 자기들끼리 더욱 더 견고해지기 원했습니다.

나는 내 아들을 죽인 로마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에 저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끼리 뭉쳐서 반드시 해방을 이뤄야만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우리 민족이 이렇게 될 일이 없을 것이요!”

심각한 강박과 죄의식, 좌절과 정치적 불안감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실질적인 ‘공중권세 잡은 자’였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예루살렘의 빌라도 총독과 갈릴리지역의 안디바 헤롯왕 역시 그 권세 잡은 자의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쉬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내 것으로 삼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우리도 이 공중권세 잡은 자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이스라엘의 앞길은 막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니 여전히 우리도 자기 의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예수님께서 발견하신 것입니다. 그 막힌 담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죄로 막힌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것은 없으니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나 통치하는 자와 백성들은 있었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은 있었고, 반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현실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가득한 이 땅을 비집고 하늘이 접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척에서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돌보심으로 오히려 멀리 있는 줄만 알았던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음을 우리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종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으로 살게 됨을 말합니다.

아들은 종과 같이 눌려 살지 않고, 자유와 기쁨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선택됨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해야 함’을 말하게 됩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속하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종교개혁이란 또 우리 삶의 변화는 예수님께 속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예수 위에 세우는 날마나 부흥하고 건강하여 지는 금구교회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끝..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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