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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41~51 (거짓의 반대말은 삶입니다.)

들어가는 말

날씨가 추워지면 어릴 때 어머님이 아랫목에서 꺼내주시던 밥이 생각납니다. 전기밥통이 있어도, 굳이 한 그릇 아랫목에 묶혀 두신 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자. 늘 아들을 염두하고 있다는 증거도 되니, 날씨는 추웠지만, 집에 가는 일이 늘 행복했던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밥과 같은 사람이 됩시다.” 라는 말에는 이런 사랑과 정성이 들어 있는 말이라서,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아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밥과 같은 사람이십니까? 아니면 법과 같은 사람입니까? 밥은 허기진 사람의 뱃속을 든든하게 하고, 법은 요즘 세태에 허기진 사람의 겉옷마저 벗기는 경우가 많으니 법보다 밥이 되시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도 법보다 밥이 되기를 원했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설명하고 계셨습니다.

 

1. 하늘에서 내려온 떡

떡은 분명 먹는 것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생각하시면 좋겠지만, 여기서 번역된 떡은 아마도 유대인들이 주로 먹는 주식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매일 매일 먹어야 하는 것. 새로울 것이 없다고 끊으면 굶어 죽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주식이고, 밥일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예수님의 설명을 잘 못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주후 100년 경에는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인육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매주 지하무덤에 모여, 성만찬를 하는데 그때 사람의 살과 피를 마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피해 매우 비밀스럽게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배 중 나누는 살과 피가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의미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헤프닝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만찬은 늘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좋은 루머가 되곤 했습니다. 사람의 인육을 먹고 마시는 자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오해를 받았던 성례전이었던 것입니다.

아니라 다를까. 오늘 본문에도 유대인들이 모여 예수님에 관해 수군거립니다. 이유는 그가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며, 아버지가 요셉이며 어머니가 마리아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언행은 예수님을 미친 사람이거나 사이비 교주로 오해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2. 당시의 종교흐름

그러나 여기서 잠깐.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예배전통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열심을 다해 유대의 왕들은 성전을 세우고, 이를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때가 지나고, 남과 북의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한 후에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이들은 예루살렘을 지키는 성벽조차 짓기가 버거웠습니다. 왜냐면 주변국의 시기와 견제가 매우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느혜미야와 에스라와 같은 지도자들을 통해 성전과 예루살렘은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점차 제사문화는 다른 식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짐승을 잡고, 성전에 모여 드리던 예식에서 점차 두루마기에 적힌 말씀을 듣고, 외우고, 실천하는 생활신앙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도전은 물론 사제그룹이 아닌 평신도 신앙운동가들인 바리새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고, 어쨌든 유대교의 종교문화는 짐승을 드려 예배를 드리던 문화에서 점차 말씀 중심의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약에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모든 제사의 마침으로 설명함으로써 더 이상의 희생제사로서의 종교가 아닌 말씀을 듣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종교로의 변화를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순종이 없는 죽은 제사가 아니라, 바울이 말한 대로 순종이 있는 산제사로서의 생활신앙으로 기독교가 출발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편적인 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성만찬례와 세례와 같은 예식들은 그 상징적인 의미들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늘 말씀 안에서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먹고 입는 생활 신앙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바로 당시 성전에서 회당중심으로 종교문화가 바뀌어 가는 시점에서 성전 안이 아닌 성전 밖에서 죄사함을 선포하시고, 또 말씀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도를 살아갈 것을 강력하게 선포하셨음을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해가 있어야 예수님이 무조건 성전문화를 배척하거나 늘 주류사회에 저항하는 무정부주의자 정도로 이해하는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예배와 살아 있는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구세주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미움을 받은 예수

물론 이와 같은 태도는 기존의 성전 중심의 질서에 반격을 가하는 태도입니다. 마치 말씀이 없이 제사만 남은 로마교회의 미사에 저항하여, 마틴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벌인 개혁운동과 다름이 없는 것이죠.

물론 이와 같은 행동은 분명히 미움을 받습니다. 단순히 기득권의 반감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든지 잠들어 있거나 눈을 감아버린 세대를 향해 깨어나라 눈을 떠라 라고 말하면 반감을 얻게 되는 것이 자연 이치이기 때문이겠죠.

 

예를 들어 어제까지 카톨릭 사제였던 마틴 루터가 갑자기 교회의 미사 곧 제사를 드리지 않고,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며, 말씀 안에서 살아 있는 생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삶에 아무런 기쁨이나 구원의 감격을 주지 못하는 제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그 기쁨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 참 예배의 특징이라고 보았던 것이죠. 물론 이와 같은 변화를 좋아할 만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시대에든 깨어 있는 다는 것은 항상 오해와 도전에 노출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유대인의 입자에서 그는 ‘이단’입니다. 말할 가치도 없는 신성모독자이며, 유대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한이 분명한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을 어떤 선각자나 성인으로 봐서도 곤란할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분명 어떤 진보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나 또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 늘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일하시므로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신 분이시고, 그분의 방향성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요셉의 아들 예수(스펙과 스토리)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오직 하늘 아버지께 방향을 두고 계실 때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런데 어찌하여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국내에는 50분이 넘는 자칭 선생이라 불리는 예수님이 계신데(웃음) 이들 이단종파에서도 자신들의 교주를 설명할 때, 이 본문을 인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요셉의 아들, 곧 사람의 아들이었지만 생명의 양식인 떡이 되셨고, 우리는 이 영의 양식인 말씀을 우리 교주님을 통해 먹게 되었음으로 당연히 그 선생님이 예수님이 아니겠느냐 라는 식이죠. 그러나 이들 이단종파는 성경에서 일부 단락들을 빼내어, 서로 짝을 맞추는 식으로 교리를 만들고, 사람들을 세뇌해 적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고 믿게 한 것이지. 절대로 그들이 재림주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늘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2000년에 오신 역사적 예수님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라고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결론을 말씀드리면 그것은 “삶과 허상의 차입니다. 이야기와 거짓교리”의 차이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관해 교리적으로 짜깁기 한 내용이 아니라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선진국의 대학에서는 입학생들에게 ‘에세이’라는 것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에세이는 그야말로 수필입니다.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적어오라는 것이죠. 바로 당신의 삶의 스토리가 있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부모의 요구나 오직 대학입시만을 위해 조작된 삶”을 살아 왔는지.. 아니면 자신의 삶을 충분히 지배하고, 건강하게 꾸려가고 있을 수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은 뭐냐? 너는 네 목소리를 갖고 있느냐? 네 생각이 뭐냐? 너는 성인답게 소신껏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회 지도자로서 얼마나 삶의 다양성과 이야기들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조작된 삶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스토리를 너는 갖고 있느냐’입니다.

*복음서에는 풍부한 예수님의 스토리가 들어 있습니다. 잉태에서부터 죽고 부활할 때까지 예수님의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들 예수를 향한 유대인들의 수군거림을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본문 43~44절 “너희는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그야말로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통해 그 “밥된 몸 살이”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라야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영의 양식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토리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스펙이 아니었습니다. 허상을 만들고, 그것이 참 살이라고 포장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 마귀에서 시험을 당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하시고 살아낸 “삶”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삶이란 이야기가 있는 삶인 것입니다.

좋은 학교나 부모를 만나지 않아도 ‘스토리’가 있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끈 삶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하나님을 만난 흔적이 있습니까? 삶의 이야기가 있으십니까?

오직 이 땅에서 손에 쥔 것만을 보고 사는 사람에게 ‘스토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세상에서 잘 살아낸 ‘스펙’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마치 이단종파들이 성경에서 거짓교리라는 스펙으로 자신들의 무덤을 키워나가듯이.. 거짓된 삶과 양심은 거짓된 스펙으로 자신을 속이고, 또 이것이 옳다 말하며, 다른 사람들도 사망에 빠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므로 알게 된 ‘하나님의 이야기, 하나님의 삶’을 우리에게 나타내어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사건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생명의 양식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떡을 드시고, 예수님을 옷 입으시길 바랍니다. 자꾸 실험해보고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으십니까? 그야말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이야기를 갖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를 이용해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채우려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먼저 내주심으로 ‘밥이 되는 삶’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은 말그대로 생활신앙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스토리,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인내했더니 축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좋습니다. 남에게 밥이 되어 주었더니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더 큰 밥이 되도록 축복하셨다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되신 예수님을 먹고, 그 맛이 어떠한지.. 그 향이 어떠한지.. 그 영양이 어떠한지.. 내 몸과 삶에 어떤 변화를 미치는지에 대해 마음껏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야말로 여러분의 삶의 스토리로 전도하시고, 스토리로 하나님을 아는 향기를 내시는 맛있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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