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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의 길(창3:22~24)

 

 

들어가는 말

 

토마스는 주님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먼저 너의 욕망이 온전히 나의 선한 뜻을 따르도록 하여라. 내가 너의 대의 명분이라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얻겠지만, 조금이라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있다면 이는 너에게 걸림돌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미리 품은 욕망에 너무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여라.”(p182)

 

1.욕망에 대한 여러 가지 분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는 인정의 욕망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입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이 욕망에 해당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욕망에 따라 자기 성취를 이루게 됩니다. 좋은 집과 차, 직장 등 부정할 수 없는 생존과 성취의 욕망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욕망이 잘 못 변질되면, 지배의 욕망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지배의 욕망은 불안에서 출발하고, 모든 것을 손에 쥐어야 속이 편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도 없으며, 반드시 지배해야만 자신이 인정을 받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경우는 매우 위험한 상태로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대등의 욕망입니다. 상대방을 자신과 대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할 필요도 없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면 그만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대등의 욕망에 이르지 못하고, 지배와 인정의 욕망에 머물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불안감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이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 모여서 세력을 이루는 것. 믿을 만한 사람을 만드는 것. 이 모든 행위가 실은 인간의 생존 욕망 중 가장 기본적인 인정의 욕망에 따라 이뤄진 행동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런 행동을 통해 실제의 자신과 불안 때문에 또는 사회적 요구때문에 만들어낸 자신을 헷갈리는 경우입니다.

 

 

2. 어떤 목사님은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늘 목사로 산다고 합니다. 물론 그 사모님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계신다고 합니다. 아내는 목사님과 사는 것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뒤로 숨어버린 목사라는 성직도 부담이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 목사님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요구와 성경을 보다 율법적으로 또는 종교적 열심으로 따르다 보니 어느 순간 자나 깨나 목사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흔히 하는 말로.. 날 때부터 목사는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란 뜻이겠죠. 그런데 녹녹치 않은 현장에 적응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목사로써 사는게 익숙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처음 목사님을 만날 때, 그 있는 그대로의 자아는 분명 지금의 목사와는 다를 것입니다.

순수함과 경직되지 않은 자유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왠지 사모님이 힘든 것은 직업 목사로 사는 남편. 아무런 행복도 느끼지 못하지만, 목사로 낮과 밤을 사는 남편이 불쌍하고 소통이 되지 않아 불행하게 되었다는 현실이었습니다.

 

 

3. 오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사람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자기 소리를 귀로 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을 하는 자신도 ‘나’라고 하지만, 외부에 들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나도 ‘또 다른 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원래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에 곧잘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내’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 설명해준다.

 

죄는 사람이 뱀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판단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 먹고는 동산에서 쫓겨난 상태를 말합니다. 무엇이 따먹게 만들었을까? 자기 결핍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향한 인간의 욕구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장 16~17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최초로 사람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어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창세기3:5절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아 아심이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간교한 뱀(즉, 사탄이 공중 권세 잡은 세상)의 말을 듣고 맙니다.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생령이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였지만, 간교한 뱀의 속임수에 넘어갑니다. 어떤 속임수입니까? ‘바로 자신에게 없는 결핍을 자극하는 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도록 하시고, 다만 한 가지 선악과만을 먹지 말라 하셨지만, 뱀은 반대로 바로 그 선악과를 먹어야 산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자기 부정이 아닌 자기 인정을 따르다 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야말로 창3:16~17와 같이 에덴동산에서의 영생의 삶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한 명, 한 명을 바라보시는 분이시지, 저와 여러분을 비교하여 바라보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 상대적으로 죄가 더 많은 다른 사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 때문에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죄로 인해 에덴동산의 영생의 삶이 인생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세상은 간교하게 틈을 타 어떻게든지 우리를 거짓된 모습으로 만족하여 살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출산하고, 수고하고, 땀 흘리고, 노동하는 데만 가치를 두는 존재가 아닌 것 입니다. 꿈꾸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고,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일 것입니다.

 

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체 영생할까 두려워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막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알게 하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께 만족하는 단순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첫째는. 가죽옷을 지어입히심입니다. 에덴 동산의 최초의 희생입니다. 입는 순간 제사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희생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둘째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먹으면 정녕 죽는데, 영원히 죽는 상태를 막고자 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실패했다고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에 대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5.

이제 그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생명나무가 다시 발견되었다는 것은 에덴동산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천국이 회복되고 에덴동산이 회복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에 에덴동산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고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될 것이며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악으로 악을 이기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놀랑룬 영적 경험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새 땅이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 입니다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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