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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8장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들어가는 말

오늘 이야기는 솔로몬 통치의 절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40년간의 건축이 마무리되고, 이제 성전 봉헌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7장에서는 그 성전의 모양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고, 특히 두로사람 히람의 도움과 원주민의 노역으로 완성된 성전과 솔로몬성 건축은 총 12만명의 인원이 동원된 거대 공사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성막에서 시작해 성전에 이르기까지 언약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 솔로몬에게 깊은 영감을 주며, 솔로몬의 연설과 기도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8장의 내용인 것이죠.

가톨릭교회는 성당 안에 예수님의 피와 몸을 상징하는 성체를 모신 제단을 중심으로 성당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마리아에게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고, 미사당 입구 옆에 있는 성수에 손을 넣어, 죄를 정결히 하는 예식을 갖춘 후 중앙 앞 쪽에 있는 제단을 향해 예를 표합니다. 또 이들의 성전 즉 교회관은 우리와 차이를 갖게 되는데, 가톨릭교회는 무형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무리인 교회뿐 아니라 눈에 드러난 교회당을 교회로 인정함으로써 성전관리와 건축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날 한 개신교 목사님이 가톨릭 신부님의 초대로 성당에 놀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날 목사님이 신부님께 말합니다. “성전은 우리 몸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인과 교회당을 동일시하는 것 같아 불편해보입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말합니다. “저희들의 모든 예식과 건축들은 철저히 교육적이고, 철저히 성사적입니다. 신자들은 성당 안에 들어오는 순간 예수님 시대에 드렸던 정결례를 경험하게 되고, 중앙에 모신 성체를 통해 이곳이 그리스도의 몸 된 곳임을 기억하게 되죠. 또 마리아와 십자가를 통해 그가 육신을 통해 오신 여자의 아들이며, 또 고통을 당해 돌아가신 분임을 알 수 있죠. 제가 보기에는 개신교인들이 이 모든 상징들을 너무 제거해서 도대체 무엇을 믿는지 신자들이 당황스러워 하진 않을지 걱정되더군요.”

 

1. 바른 성전 신앙

그런데 우리 개신교회는 성전의 의미를 이러한 건물에 두지 않고, 본질적으로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그 곳이 바로 성전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면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성전, 성막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임재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말씀으로 임재하십니다. 모세와 여호와 하나님은 대화를 하셨습니다. 또 십계명을 주셨죠. 그리고 성막과 성전에는 반드시 그 중앙에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말씀을 듣는 백성이라야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뜻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교회에서도 세 가지 말씀을 모십니다. 하나는 성경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성찬례를 통해 모시는 예수님의 몸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신령한 예식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선포되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말씀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영으로 임재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 영으로 임재하십니다만.. 보다 구체적인 영으로의 임재를 말합니다. 성경에는 구름 가운데 임재한 하나님에 대해 여러 번 표현됩니다. 왕상8:10에도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눅21장 묵시록에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의미한다고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단들의 인구름이니 떼구름이니 하는 말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쨋든 우리가 12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예측할 수 있습니다만.. 12절에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말씀하셨사오나..” 를 보시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한 광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을 위해 어둠에 은혜롭게 둘러 싸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다는 믿음이 있던 당시에는 이처럼 신비로운, 알 수 없는, 무소부재의 하나님 존재를 ‘어둠 속에 광채’로 표현했던 것이죠.

그래서 제사장들은 그 영광의 임재를 경험할 때 감히 감당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재로 인간에게 드러나셨고, 기꺼이 인간이 지은 성전에 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정성으로 하나님을 바라면 우리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임하시는 줄 믿습니다. 더럽고 죄 많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은 기꺼이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마음껏 자신을 우리를 통해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크게 역사하는 이치는 마치 세상에 가장 큰 절망을 만난 사람에게 발견되어 지는 소망의 하나님과도 같은 것일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면서 우리를 통해 점점 먼 곳까지 그 은혜를 드러내길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그 일들이 순조로울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차분히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늘려야 할 것입니다. 가만히 주님을 바라보도록, 우리 안에 또 주변에서 그리고 성서와 교회에서 찾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 기도하고, 또 하나님의 영을 정당하게 초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믿음을 보시고 반드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신비한 체험을 통해 신자는 다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비 안에 충분히 머무십시오. 그리고 머물렀다면 행동하셔야 합니다.

세 번째, 사건으로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사건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하늘은 열렸습니다. 불신앙과 죄악으로 살던 인생도 예수님을 영접하니까 하늘이 열렸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의 구원의 사건 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쓰러져 가고 죽어가는 교회들이 다시 영적으로 각성할 때 그 회복의 사건 중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던 것입니다. 영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이자, 하나님께 사용되고 있다는 증표인 것입니다. 또한 영은 내가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초대되는 것이고 사귐이 있는 비밀이 있기에 우리 안에서 날마다 그 모양과 성질을 달리하며, 성장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까운 곳에서부터 역사하는 영은 점차 먼 곳으로 역사되어야 합니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이웃과 이웃 나라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나로부터 시작해서 사회를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죽음위에 임재하시고, 하나님은 사랑의 행위 위에 임재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간절히 환자의 고침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환자의 아픔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늘 우리의 사건들을 통해 또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드디어 성전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성전이 참 성전이 되려면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셔야 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이 완공된 후 언약궤를 지성소로 메어 왔습니다. 그리고 성전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게 임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하나님이 온전히 좌정하셔서 왕으로 사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 가장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고 모셔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 성전을 통해 받는 복

 

오늘 읽은 본문은 솔로몬은 웅장한 성전을 지었지만 그 성전이 하나님을 모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왕상8:27~30 읽어볼까요) 그래서 그는 이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들으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복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또 전쟁에서 패했을 때나 이방에 잡혀 갔을 때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기도대로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이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하루 세 번 기도할 때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 것은 이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면서 너무 좋아서 7일에다 7일을 더해서 14일간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한 성전에는 모든 백성들의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이 넘쳤습니다. 봉헌식을 마치고 가는 백성들에게 솔로몬은 축복하였고 백성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였습니다.

 

마무리

하나님의 임재는 나로부터, 내 가정으로부터, 내 교회로부터, 내 나라로부터 점점 멀리 나타나야 합니다. 주변의 이방인들에게도 솔로몬의 성전은 기도의 처가 되었습니다. 멀리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상상하며 하나님께 기도만 하여도 응답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왜 교회에 나와야 할까요? 만일 이 건물이 필요 없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가정이나 광장 같은 곳에서만 모여 예배를 드리고 흩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바로 믿지 않는 이방인과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구암교회가 용지 지역민의 기도의 둘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망의 둘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목사 없는 교회라서 못 나오겠다고 하는 분이 계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니 나오시라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시험을 당하지 않고, 멸시를 당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모든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는 분임을 늘 잊지 마시고, 가까운 곳에서 점점 먼 곳으로 우리의 믿음과 축복과 성전의 신앙이 날마다 퍼져 나가길 바랍니다. 끝..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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