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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는 양들과 더불어 산다.(요10:11~15)

먼저 감사합니다.

들어가는 말

히브리어로 학카톤은 막내, 최하급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학카톤은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갔을 때 다윗을 부르던 아버지와 형들의 말이고, 소외된 이웃을 바라보며 지어낸 세상의 말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초원이라 불리는 소외의 자리에서 목동을 했고, 모세 역시 나이 마흔에 떠난 광야에서 목동을 했습니다. 누구도 찾지 않는 소외된 자리에서 오직 양들만을 돌보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그 소외의 자리에서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새끼 양 한 마리를 되찾기 위해 사자와 곰을 상대로 물맷돌을 던질 때 그를 찾아가셨고, 모세가 40년이나 성실히 목자의 삶을 살았을 때 비로소 그에게 찾아가신 것이죠.

이와 같은 사실은 들사람에 불과했던 히브리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무엇인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시고, 사용하신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고,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1. 소외의 자리에서 부름 받은 종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선하다는 것은 좋다, 온전하다 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선한 목자란 삯꾼과 달리 양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으며, 자신의 목숨도 돌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장로님이 오랜 시무로 스트레스가 쌓여, 휴무를 하실 때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교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일 년이란 시간을 보내실 때 불현듯 마음에 이런 감동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성도들과 함께였을 때는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기만 하더라도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성도들과의 거리를 두고 떠나자, 마음에 한없는 허무함이 밀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힘들어했던 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향한 계획이자, 훈련이었음을 다시 감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장로라는 직분은 늘 성도들과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성도들의 대표로서 매우 명예롭고 의미 있는 직분인 동시에 일반 성도들이 알 수 없는 지독한 소외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일을 두고 남모르게 하나님께만 물어야 할 일이 적지 않으며, 앞에서는 칭찬하지만, 바로 뒤돌아서 자신들을 욕하는 성도들을 경험하기라도 한다면 그 날 밤은 억울함에 잠도 못 자는 자리인 것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쉴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소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일 것입니다. 은혜는 수고할 때 부어집니다. 은혜는 인내할 때 부어지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작은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목자는 양과 더불어 살며 힘을 얻어 살아갑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 목자는 매일 양들을 돌보고 먹여야 하는 평범한 일상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교인을 심방하고, 돌보는 일이 그러한 것이죠.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해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돌볼 때 기쁨을 얻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개성 없어 보이는 양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점차 양들의 몸에 드러난 상처와 흠으로 양들을 구분하게 됩니다. 외관을 보면 모두 하얀 양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겪은 상처와 아픔은 이들을 돌보는 목자의 관점을 다른 것으로 바꿔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목자는 양들과 더불어 살며, 그들의 상처와 아픔으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할 때 양들도 목자를 기억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할 때 성도님들도 여러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목자는 양들을 지켜야 하는 특별한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목장 안에 숨어 들어온 이리떼를 물리쳐야 하며 양들을 도둑질하거나 물어가는 일이 없도록 울타리를 보수해야 합니다. 동시에 사자나 곰이 양들을 채 갔을 때 목숨을 걸고 양들을 되찾아 와야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목자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닙니다. 지팡이는 들짐승을 겁줄 때 사용되거나 양들의 키를 살필 때 제는 자로도 사용됩니다. 한 마리 한 마리 그 수를 세어 지팡이에 세기기도 하며, 무엇보다 지팡이는 구렁에 빠진 양들의 목을 걸어 양들을 구원해내는데 사용되는 요긴한 물건인 것입니다. 목자는 이리떼를 물리쳐야 하지만, 동시에 양들을 건져내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특별한 때에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떤 능력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할 때 한 마리의 양을 얻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양이 울타리 안에 있다고 한 들, 울타리 안에 노략질 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 목장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자는 틈틈이 힘을 키우고, 목장의 상황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일의 결정에 있어서는 교회를 위한 선택을 먼저 해야 하고, 반대로 작은 한 사람 한 영혼을 위해 교회를 설득해야 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자는 복잡한 현대사회 안에서 퇴색 되버린 옛 유산이 아니라 오히려 복잡한 현대 사회에 더욱 필요한 사명이 되었습니다. 목자는 소 떼에 마음을 두며,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이 자세를 회복할 때 속한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고 건강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목자의 자세와 본질입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는 선한 목자입니다. 저는 이 말 속에서 예수님으로부터의 어떤 스트레스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는 양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 놓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었지만, 그것이 곧 스트레스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저만 보더라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등지고 멀리 외곽으로 외출을 나갈 때도 있었습니다만, 어느 순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목자는 양과 더불어 산다!

 

장로는 매우 귀하고 존엄한 직분입니다. 교회의 지도자이며, 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일인지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나를 몰라주는 성도님들 때문인 경우가 있음을 돌아봅니다. 교회의 사정을 속 시원히 이야기하지 못한 체 일을 진행하는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이를 오해해서 장로님들을 힐난하는 성도님들을 대하실 때 낙심도 됩니다. 그러나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 말씀과 같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주님 안에서 이뤄진 일이라면 반드시 적지 않은 성도님들이 여러분의 뜻에 동의하고, 언제든지 함께 할 것이란 사실을 믿으셔야만 합니다.

내가 먼저 성도님들을 믿을 때 믿음이 내게도 돌아오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먼저 믿어주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따르거나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원하는 기준은 때로는 매우 높고, 부자유스러워 보이지만, 돌아보면 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속사정을 이야기한다면 이해되지 못할 문제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기꺼이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면 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면 서로의 음성을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먼저 사랑하고, 먼저 다가가는 목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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