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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 25-33 배신의 일생을 산 여로보암

 

들어가는 말

한 모태신앙을 가진 집사님이 결혼을 하고 다시 신앙생활에 불이 붙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금요기도회에 나섰다가 신유의 체험을 하고는 하나님 작은 미용실이라도 좋으니 만일 미용실이 생기면 복음미용실이라고 짓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친지 한 분이 찾아와 선뜻 돈을 내놔 미용실을 차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이 집사님은 20년 동안 7번이나 미용실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갈 때마다 옆에는 어김없이 다른 미용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일도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시작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큰 교통사고가 나서 합의금으로 그동안 모은 돈을 내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 예수님을 배반한 체 손님을 쫓아가던 삶을 정리하고, 다시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미 파산한 세상 가운데에서 주님은 우리가 다시 세워지는 건강한 삶을 요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너무 늦으면 주님이 미처 손을 대고자 하여도 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이야기 주인공인 여로보암에 관한 경우입니다.

 

1. 여로보암은

부: 느밧, 모: 스루아, 에브라임 지파. 자: 아비야, 나답.(11: 26, 14: 1, 20)

여로보암의 아버지는 솔로몬 왕의 신복이었습니다. 믿을 만한 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높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을 찾아와 나라의 12/10을 나눠주고 마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의 삶은 끝내 우상숭배와 배반으로 끝마쳐 짐을 미리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열심히 하나님의 손을 거부하는 잘못된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그런 것이죠. 우리는 그래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일인지 분명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한 번의 선택이 영영 다시금 자신의 영혼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이 함정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있었지만, 그가 조급함으로 그르친 과정들은 결국 그가 하나님을 멀리 하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그 배반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합니다.

 

2. 중요사건

첫 번째 배신 1: 솔로몬 배신(11: 26, 40) - 망명

아버지가 솔로몬의 신복(부하)이었고 솔로몬이 그를 높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아히야의 말을 듣고 그것을 못 참아서 왕을 배신하고 반역을 일으키고 애굽으로 망명.

여기서 그가 애굽 땅으로 도망친 행동이 재밌습니다.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 나온 땅입니다. 물론 솔로몬의 때에도 애굽은 실력 있는 나라였음에 분명하죠. 그러나 성경에서 애굽은 다음의 상징적인 의미들이 있습니다.

첫째. 실패의 상징입니다. 모세에게 애굽은 자신의 살인죄를 기억하는 나라입니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예전의 영화가 있던 곳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실패하여, 낙망을 선물해준 곳이기도 합니다.

둘째. 심판의 상징입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라는 사건이 집행된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복음서에서 마리아와 요셉도 이 애굽 땅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 출애굽 사건이 바로 애굽에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애굽은 죄에 대한 심판의 장소이자, 이곳을 떠나는 자에게는 구원의 장소로 이해될 수 있는 곳이죠.

그런데 여로보암에게 애굽은 그야말로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한 장소일 뿐입니다. 애굽은 여로보암을 받아줬지만, 그는 이곳에서 마치 다윗왕이 사울을 대할 때 처럼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대할 때 처럼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바로 배반의 때이죠.

 

배신 2: 다윗 왕조 배신(12: 1-2, 20) - 나라 세움

그러던 중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자 자신의 추종자들의 요청으로 이스라엘의 세겜 땅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부역이 지나치니 줄여달라’ 청했다가 이 요구가 거절당하자, 나라에 등을 돌리고 다른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이 어쩌면 여로보암의 행보를 조급하도록 했는지도 모릅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왕이 되는 일이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쉽지 않던 운명을 감당하도록 한 면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여로보암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쩔 수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기어이 ‘일을 치르고자 했던 여로보암의 반역’입니다. 사람은 힘을 가졌을 때 진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여로보암의 이스라엘의 불행을 이용해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체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의 결정적인 여로보암의 배반이었던 것이죠.

 

배신 3: 하나님 배신(11: 38-12: 27-33, 14: 7-9) - 파멸

그러나 하나님의 순리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내와 믿음으로 일이 세워지지 않는 이상 인간은 늘 불안하고, 그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치기 마련인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스스로 자멸해 갑니다. 그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왕권이 흔들리는 것을 매우 겁내합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해내고야 말죠.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왕권에 대한 집착. 12: 27: 대비: 삼상 13: 8-11)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두 금송아지 만들고 신이라 칭하고(12: 28, 대비 출 32: 4) 제단 만듭니다.

벧엘(남)과 단(북) 두 곳에 산당을 짓게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의 성전 신앙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고 극복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산당(풍요의 신 숭배)에서 제사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일반으로 하여금 제사장으로 삼아 억지로 절기를 지키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무너진 신뢰입니다. 그야말로 죄의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서지 못한 솔로몬의 죄로부터의 원인이지만, 이때 당시 솔로몬이 그랬던 것처럼 왕권 강화로 이방 신까지 이용되었던 것과 달리 이젠 여로보암은 선을 넘어 야웨 하나님 자체를 거짓으로 모시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의 상황도 이를 조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은 이젠 죄와 비극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예루살렘의 성전은 그 대단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의미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에게 죄로 더렵혀진 장소가 되었음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죄의 빌미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죄의 빌미들이 늘 또 다른 배반의 씨앗을 품게 만드는 것이겠죠.

그럼에도 책임을 물을 때 여로보암은 자유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의 기질 역시 이와 같은 배반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변의 상황들이 배반을 엮어가도록 할 때 이를 알면서도 오히려 이를 이용한 면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여로보암의 속 내는 옳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자손들의 씨가 마르게 된 것이죠.

 

아들 아비야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섬긴 것을 제외한다면, 여로보암은 죽은 뒤 그의 후손들이 멸절됩니다. 그의 아들 나답은 통치 2년 만에 ‘바아사의 반역’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심지어 이로써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로보암 가문의 씨가 성경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를 따랐던 10지파 역시 지구상에서 완전히 종적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두려워야 할 것입니다.

 

나가며.

여로보암은 분명 아히야 선지자로부터 미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역사의 한 왕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사울과 다윗, 솔로몬의 때를 이어 어쩌면 이 모든 죄악의 연속성이 계속해서 여로보암에게도 흐르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서는 지독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읽는 우리들은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뜻을 두고 살면 결국이 다 같더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나라가 우리 삶 가운데 한 층 더 다가오고, 우리의 정신이 더욱 더 정결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만 할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그 독특한 조급함 즉 추진력 때문에 또 자신의 힘을 지키기 위한 발빠른 대응력 덕분에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잔이 다 했을 때 위로부터 부어지는 불행의 잔은 결국 자신의 가문과 10개 지파 자체를 멸망하도록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의 이끄심과 명령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초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살펴볼 때 과연 있는 것을 뒤 엎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차라리 이미 세워진 것을 지켜내는 것이 차라리 나을 때도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떤 왕도 하나님의 뜻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백성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뜻대로 살 수 있는 더 많은 시간과 기회를 주고 계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세운 모든 것의 흥망성쇠가 인간의 죄에 있음을 살펴본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깊을수록 반면 여호와의 법도와 나라는 영원할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는 영원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높고 두렵게 여길 줄 아는 자가 결국엔 모든 성읍과 나라를 차지할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놀라운 이 사실은 결국 하나님 앞에 작은 자 결국 12지파 중 2지파에 불과한 남유다가 역사의 마지막까지 살아남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작은 자 사울과 다윗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깊은 뜻이... 결국 남유다의 베냐민과 유다지파만을 지켜주셨던 하나님의 나중 행동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자는 살아남습니다. 겸손하면 다시 쓰십니다. 지금의 흥왕이 대수가 아니라 오늘 이야기를 통해 긴 호흡으로 역사와 섭리를 이해하시는 시간 되셨기를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면 반드시 하나님이 선하게 이루십니다.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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