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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03 20140903.하나님이살리는사람.왕상17:1~16

하나님이 살리는 사람(왕상17:1~16)

들어가는 말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무너뜨린 것을 다시 세운 히엘의 두 아들이 죽음을 당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죽음과 대비해서 하나님의 종 엘리야와 엘리사에 의해 살아나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살리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 현실

지금으로부터 약2900년전에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 중 북이스라엘은 특히 우상숭배가 범람하였고, 북이스라엘의 왕 중에 가장 완악한 왕을 뽑는다면 열왕기서에서는 단연 아합왕을 뽑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 이후에 나오겠지만, 예언자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는 훗날 군대장관 예후와 더불어 군부 쿠테타를 일으켜, 예후를 왕으로 세우고, 예언자집단에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예후는 말하기를 실제로는 ‘아합’이 다른 왕들보다 바알신을 섬기는 것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일반 국민이나 정치인의 눈에 아합은 이스라엘이 그래왔듯이 어쩌면 평범하게 악한 왕일수도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지독히 악한 군주였다고 열왕기서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아합왕을 가장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아합은 지금의 레바논 지역인 당시 유력한 제국 페니키아의 군주였던, 엣바알의 딸과 결혼함으로서 역사가 말하는 대로 상당한 공처가로 주변국의 영향 아래에 이스라엘을 놓이게 한 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실은 아합은 믿음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자였습니다. 다만 제왕 초기부터 머리가 영민하고 계산이 빠른 자임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 당시 이스라엘 왕국의 북쪽에 위치한 시돈 땅의 페니키아 공주,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서 국가의 이익과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했습니다. 물론 그가 나중에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을 생각한다면, 이 모든 일이 철저히 자기 욕심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교활하고, 욕심이 많은 자가 아합인 것이죠.

역사가들도 그가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의 부국을 위해 선택했던 해상중개무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세벨과 결혼을 했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에 들어온 주변국과의 외교의 생리는 외부적으로 결혼정책으로 이해관계를 결속하고, 내부적으로 군사력을 키워 우발적인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풍토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엘리야를 세우신 하나님

오늘 본문은 그런데 몇 가지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뭄을 통해 모든 사람을 괴롭게 했는가? 그리고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르밧의 이방 과부에게 은혜를 베풀었는가 입니다. 왜 그녀를 살리셨는가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은 후 첫 번째 했던 일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인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엘리야에게 선지자로서 첫번째 임무로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라고 하셨을까? 선지자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스스로 곤고한 자리에 내모는 것.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갖춘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충만한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 당시 악하기로 유명한 아합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자는 미가야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850명의 공식선지자가 있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겠지만 아합의 악행을 고발하지 못했습니다. 아합에게 악행을 지적하는 것은 곧 바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아무도 하지 않고 하기를 끔찍히 두려워하는 일을 하나님에게 명령받아서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공증 받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그가 왕이든 평민이든 사악한 자든 착한 자든 하나님의 말씀을 단호히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대상을 가려서는 안되는 것이죠. 이제 엘리야는 그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으니 아합과 같은 권력자의 도움을 받기는 그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제 너는 권력자에게 붙어서 무엇 얻어먹을까 하는 생각은 아예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먹고 사는 문제도 하나님께만 맡기라는 뜻으로 즉시 요단 그릿시냇가에 가서 까마귀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기근을 선포하고 난 후 까마귀가 주는 떡과 고기 그리고 시냇물이 마르기 전까지 마십니다.

 

3. 작은 자들의 용기

엘리야가 두 번째로 하나님에게 명령을 받은 것은 악한 아합에게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르밧 과부에게 찾아가서 그 가난한 과부의 떡을 빼앗아 먹는 것입니다.

차라리 사악한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것은 당당하고 떳떳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가뭄 중이었고 사람들은 양식이 떨어져서 난리가 났는데 그것도 부자집에 가서 떡을 달라고 하면 그나마 나을텐데 가난한 과부의 집에 가서 떡을 달라고 해서 먹으라니 하나님도 참 너무하시다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 같은 것이죠.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이 시키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합니다. 하나님이 과부의 집에 가서 그것도 한 기근 중에 떡을 달라 해서 먹으라니 엘리야는 그대로 합니다.

 

엘리야는 시돈땅 사르밧에 가서 한 과부집에 들어갔는데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물을 달라하고 과부가 물을 가지러가는 것을 불러 세워놓고 떡 한 조각을 함께 가져오라 했습니다. 과부는 이런 가뭄에 물을 달라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양식이 다 떨어져서 죽을 판국인데 떡까지 가져오라는 엘리야를 보고 어이가 없는지 이렇게 대답합니다.

"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말은 엘리야가 이미 자신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밝혔다는 것이고 그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다는 것은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진짜로 말하는데 라는 뜻입니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있는데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마지막으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먹고 죽을 판국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속에는 당신이 하나님 여호와의 선지자라 하는데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서 힘없고 가난한 우리 같은 과부를 굶어죽게 하려하느냐 그런데 그 마지막 떡을 달라고 하는군요.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선지자가 맞소? 하는 원망 섞인 소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원망섞인 과부에게 조용히 다정스럽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말대로 하시오 먼저 나를 위해 작을 떡을 만들어 가져오고 그 다음에 당신과 당신의 아들을 위해 만드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기까지 당신 집의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했고 하나님의 과부의 집에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이것이 엘리야가 선지자로서 행한 첫 번째 기적입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선망하며 위대하다고 외치는 엘리야가 지질이도 못나고 가난하고 그것도 이방의 시돈의 한 과부 앞에서 행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시돈 땅은 엣바알의 본고장이었다. 엣바알은 시돈의 왕이며 아합의 처 이세벨의 아버지이다. 또한 항구도시이며 아스다롯의 숭배지이기도 하다. 아스다롯은 사랑과 전쟁의 여신이며 검은 옷을 입고 입은 피를 흘리며 오른손에는 독사를 쥐었고 뱀 위에 올라탄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타락한 모습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아스다롯을 숭배하는 시돈의 왕이며 바알의 제사장의 딸이 아합 왕의 처가 되어 이스라엘에 아스다롯을 들여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세벨은 희대의 악녀가 된 것입니다. 희대의 악녀가 있는 그 땅에 바로 그 시돈 땅에 그것도 가뭄과 기근의 한 가운데서 그것도 아무 힘도 없는 가난하디 가난한 한 과부의 집에 왜 엘리야를 하나님이 보내셨을까요? 이스라엘의 믿음이 좋은 과부집이라면 그래도 나을 텐데 말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이며 우상숭배의 열악한 종교환경 속에서 궁핍하고 가난한 한 여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타락할 대로 타락했고 의인 하나가 없을 정도로 부패했습니다. 그러나 아스다롯의 악녀가 판을 치고 사악한 우상숭배가 팽배한 시돈 땅에 아주 보잘것없는 한 여인의 믿음과 순종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한 가를 비교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 덕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지만 이 사르밧 과부는 한번 본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말을 들었고 믿었고 순종했고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고백하고 증거하기까지(왕상17:24) 합니다.

 

이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예수님 당시 두로 땅에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과도 통합니다. 그 여인은 이방여인으로 천대받았지만 굽히지 않는 믿음과 간구로 예수님에게 딸을 고침 받았습니다. 이 믿음은 지금까지도 이방여인의 탁월한 믿음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은 그 당시 스스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백성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랑하던 이스라엘을 부끄럽게 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조개 속에서 진주를 찾듯이 모래 속에서 금을 찾듯이 쓰레기더미에서 핀 장미꽃을 찾듯이 지금도 이름도 없고 내세울만한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을 찾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높여주시고 잘되게 하시니까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과부들은 하나님에게 특별히 받은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부족한 중에서 어려운 중에서 그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하나님 됨으로 높여 드리고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너는 내가 너에게 특별한 것을 주지 않았는데도 나를 사랑하고 내가 너를 높여주지 않았는데도 나를 믿고 순종하고 나를 높여주는구나! " 그래서 하나님은 이 비천한 이방과부 앞에서 엘리야의 첫 번째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좋아하며 성공지상주의로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이 찾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시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사람인 것입니다.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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