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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 실린 박상돈님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1. 서론

교육의 현장은 있으나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탄식하는 우리네 교육 현실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다시한번 음미하고 그 참된 방향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일환으로 근대 우리 민족주의 교육사상가를 연구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강 이승훈은 우리 민족이 고통받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속에 나라와 민족과 교육을 위한 사랑의 화신이며 구원의 청년으로서 쉼없이 향상하고 끊임없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여 敬, 愛, 聖을 실천한 구현자로서 평가받는 인물로서 그의 삶과 교육사상을 통해 우리 교육의 본질과 방향성을 깊이 고찰해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2. 남강 이승훈의 생애

이승훈은 1864년 3월 25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인환, 자는 승훈이며 호는 남강이다. 빈한한 서민 집안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16세에 유기상의 점원이 되었으며 10여년 동안 유기행상·공장 경영 등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국내 굴지의 대실업가로 성장하였다. 그는 공장경영방법을 개선하여, 노동환경을 일신하였고, 근로자의 신분이나 계급에 구애됨이 없이 평등하게 그들을 대접하여 근로자들의 생산능률은 향상되고 품질도 좋아져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국제무역회사를 세워 세계무대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한국 최초의 국제투자를 시도하였는데,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로 파산하게 되었다 이후 시골에 칩거하면서 늦게나마 면학의 길을 찾던 중 1907년 7월 평양에서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 난 뒤 교육을 통해 민족을 구하여야겠다는 굳은 결심 아래 금연·금주와 단발을 결행하고, 안창호가 조직한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평양 에 돌아와 서당을 개편하여 신식교육을 가르치기 위한 강명의숙을 설립하고, 이어서 이해 11월 24일 중등교육기관으로 오산학교를 개교하여 교장이 되었으며 1910년 기독교 신자가 되어 학교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운영하게 된다. 사실 당시 그 창망하던 시기에 조정의 힘이나 선교회의 힘이 아니고 장사하던 사람의 힘으로 민족의 간부를 양성하는 신교육기관을 세운 것은 놀라운 이적이었다. 결국 이승훈을 통해 오산학교는 민족교육의 산실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는 1911년 5월 안악사건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9월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로 압송, 4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루게 된다. 하지만 그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계속되어 1915년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하는 한편,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가출옥, 곧 이상재, 유진태 등과 함께 조선교육협회를 창립하여 전국의 사학교육을 지도하는 등 계속 그의 뜻을 펴나갔다. 그리고 1924년 동아일보사 사장에 취임, 물산장려 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을 추진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열린 강연회를 통하여 시국강연을 하였으며 26년 오산학교 초대 이사장을 지내면서, 이상촌 건설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사장에 재직 중 67세를 일기로 그의 생을 마치게 되었는바 오산학교에서 사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루게 되었다. 그리고 고인이 된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3. 남강 이승훈의 교육사상

1) 민족교육 진흥사상

남강 이승훈의 대표적인 교육사상은 교육을 통한 민족진흥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한말 국권회복운동은 무장투쟁노선과 실력양성운동 노선을 각 채택한 의병운동과 자강운동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특히 자강 운동이란 한국 민족이 주체가 되어 교육과 실업을 진흥함으로써 경제적, 문화적인 실력을 양성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을 달성하자는 운동이였다.
결국 이러한 자강운동은 애국계몽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남강은 이러한 계몽운동에게서 큰 영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을 민족 진흥운동에 헌신하였는바 교육을 통해 이러한 진흥이 발현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교육진흥사상은 1907년 오산학교 개교식에서 언급한 그의 연설문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금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데 우리가 그저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총을 드는 사람 칼을 드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긴중한 일은 백성들이 깨어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떠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있으니 그들을 깨우치는 것이 급무이다"

사실 그의 이러한 교육진흥사상은 도산 안창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며, 1907년 그의 생을 뒤바꾸어 놓은 평양에서의 안창호의 강연 역시 교육진흥론에 관한 것이였다. 당시 안창호는 물고기를 바로 잡으려면 먼저 그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후진들을 새교육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이 나라를 구하는 첫째 방법이라고 역설하게 된다.
이러한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 크게 감명받은 남강은 강연이 끝난 후 안창호와 함께 나라의 장래와 교육의 일을 놓고 심도깊은 논의를 하면서 이승훈은 그의 평생 교육진흥사상을 통한 민족 계몽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훗날 당시 안창호와의 주고받은 대화를 "잊을수 없는 감격의 순간이었다”라고 회고하였다 하니 그 순간부터 꿈틀거림은 일단 뜻을 세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우리가 살아갈 길은 교육을 통하여 힘을 길러 나가는 데에 있다"는 말을 언제나 외우고 다녔으며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이후 그의 다짐대로 교육자로서의 일관성있는 삶을 끝까지 실천하게 되는데 그의 마지막 유언이 "낙심하지 말고 겨레의 광복을 위하여 힘쓰라,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학 표본을 만들어 학생들을 위해 쓰게 하라" 였다고 하니 자신의 삶을 끝까지 다할때까지 민족을 위한 그의 교육진흥사상은 매우 투철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는 민족의 진흥을 위해 신학문을 도입할 것을 결심하였으며 처음세운 강명의숙에서부터 신식교육을 가르치게 하되 처음부터 과목은 산수. 체조. 수신. 역사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 거의 모든 학교들이 전통적인 구교육이였는바 그는 교육내용을 일신하여 다른 민족사학들과 함께 서양식 교육내용, 즉 자연과학 과목(물리, 화학, 생물, 수학, 산술 등)과 사회과학 과목(법학,경제학, 지리, 역사, 정치학)을 도입하였던 것이다. 이는 부국강병을 위하여 시급히 요청되었던 당시의 시대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그의 교육진흥사상으로 말미암아 오산학교는 독립운동의 산실이 되었으며 졸업생들의 면면 역시 주로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상가, 종교인 등으로 일제와 결탁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되었으며 독립운동의 핵심 지도자들로서 세워졌던 것이다. 한마디로 남강의 일생은 민족진흥과 애국운동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 일관성있는 삶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그에게 있어서 민족회복을 위한 이상이였고 통로였던 것이다.

2) 기독교 교육 사상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나라를 빼앗긴 것에 대해 몹시 괴로워하던 남강은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한석진목사의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 큰 감동을 얻게 되었다. 그후 그는 학교로 돌아와 교직원과 학생들을 모아놓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학교에서 신앙집회갖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민족 전체가 다시 힘을 얻고 하나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헌신, 봉사,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정신으로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해 12월 학교의 교육주지를 기독교 사상에 근거하여 바꾸면서 라부열(Slacy L. Robert)목사를 교장으로 추대하고 성경과목도 가르치게 되었으며 특히 나중에 교장이된 유명모 선생과 조만식 선생은 오산학교의 신앙교육터전을 튼튼하게 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비록 1922년 일제의 신교육령에 의거하여 1923년 11월에 기독교 교육주지는 삭제되고 일반학교가 되었으나 학교안의 신앙집회와 기도하는 분위기는 계속되었으며 신앙적인 모임과 예배를 통해 더욱 친밀한 동료의식속에 생활하며 아침저녁으로 찬송가 소리가 학교를 메아리쳤다고 전해진다.

한편 남강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경,애,성(敬愛誠)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았는바 하나님을 공경하고 스승을 공경하며(敬),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며(愛), 진실하고 성실하게 거짓이 없이 사는 삶, 또 이를 따르는 학생들을 기르는 것(誠)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게 되는데 이것은 오산학교의 교훈인 '사랑, 정성, 존경"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그가 강조한 의(義)의 교육은 기독교 사상에서 잘 나타나는데, 교육과 관련된 신앙의 형태로 이를 강조하고 의가 아닌 거짓이나 게으름이나 이기심이나 권모술수나 아집을 버리고 항상 큰뜻속에서 행하고 배우고 생활하도록 가르쳐 준 것이다. 남강은 자주 성경을 인용하여 훈화를 하였는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교훈은 훗날 졸업생들로 하여
금 개인생활에 있어서 정직하게 함은 물론 일제와의 투쟁에 있어서 강건한 민족애를 발휘하도록 다그친 것으로 볼수 있다. 이런 교육을 통하여 졸업생들은 개인의 출세나 영달보다 남을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도록 하는 헌신과 봉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또한 의라는 것은 남에게 짓밟히고 끌려다녀서는 안되며 모두가 덕스럽게 사는 것이 공의임을 배웠던 것이다. 결국 남강은 그의 교육의 방향성을 기독교 사상으로 귀결시켰기에 기독교 교육을 실천적으로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3) 실천교육 사상

남강은 어려서부터 남의 심부름꾼이 된즉, 주인이 시키기를 기다릴 것 없이 자신의 일을 실천적으로 성실하게 감당했던 사람이였다. 그리고 지금도 남강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20년 동안 그는 또 죽고 또 살고 또 살고 또 죽었다. 이십년간구생구사(二十年間具生具死)”그가 늘 강조했던 것은 할 일이 있는 사람에게 게으름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에서는 “이따가”란 말이 나온 일이 없다.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본 일이 없고 하품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가 예순이 지났어도 언제 몸을 찌그리는 일도, 다리를 뻗고 버둥버둥하는 일도, 대낮에 낮잠을 자지도 않았으며 삶이란 개인이거나 나라거나 밑져서는 안되는 그런 것이었고 할 것은 반드시 하자는 실천적인 인물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실함은 그가 가꾼 교육현장에도나타나게 되어 실천교육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는 학생들에게 교육지식이나 이론을 가르친 적이 없지만 오산의 많은 졸업생들은 남강을 통해서 배운 체험과 가르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교육자 남강을 그리워한다.
그는 특히 사람이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큰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극히 예사로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뜰을 쓰는 것, 각각 자기방을 치우는 것, 교실을 깨끗이 쓸고 정돈하는 것 등 이 모든 작아보이는 실천적인 일이 실은 나라를 사랑하는데 통하는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날마다 몸소 실천하였는데 특히 교실청소, 자기방 청소, 화장실 청소는 언제나 솔선하였고, 특히 남들이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는 옥(獄)중에서도 도맡아 했다. 학교의 설립자이면서도 학교 화장실의 얼어붙은 변을 손수 도끼로 깨고 청소했다는 일화는 바로 이런 실천교육의 표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가 늘 주장했고 실천했던 '사사교육 처처교장(事事敎育 處處敎場)'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실천궁행의 교육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매사에 진실할 것을 마음먹고 교육의 현장속에서도 실천하였는바 마음과 몸을 다하여 일하여서 대중의 신망을 받는 지경에 이르는 진실한 진인이 될 것을 강조하면서 실천하는 교육자였던 것이다.

4) 산업교육 사상

남강의 실천교육사상은 산업교육 사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그가 어렸을적 유기상의 점원에서 유기행상·공장 경영 등으로 대실업가로 성장했었던 과거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 남강은 민족의 자생을 위해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힘은 산업의 힘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철도를 깔고 항만을 만들고,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낸다면 힘이 생기고 그 힘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또한 당시 때마침 덴마크 교육사조가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는데 덴마크에서 그룬드비히에 의한 국민고등학교 교육이 나라를 일으켰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직접 덴마크를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교육의 성과가 보고되었던 것이다. 또한 도산 안창호도 우리에게는 정신과 함께 기술이 필요하며 남녀노소가 1인 1기를
습득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물건을 만드는 일이 소중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에 도전을 받는 남강은 소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실천주의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덴마크의 교육사조를 따라 농민학교와 공동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강은 오산학교와 신천농민 학교간의 자매결연을 추진하면서 학교재단이 경영하는 직조공장과 제사공장과 연계하여 오산일대를 새로운 교육도시로 만들기로 계획한후 농촌과 도시가 연결된 전원도시로서 오산에 학교와 교회와 도서관을 중앙에 두고 공장이 교외에 위치하며 그 사이를 푸른 마을로 메꾸는 일을 진행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교회, 학교, 산업을 공동전선으로 파악하고 서로 유기적인 교호작용에 힘을 집중하여 교회를 통해서는 민중의 신앙을 깨치고, 학교를 통해서는 교육을 일으키며, 산업을 통해 나라를 근대화하는데 삶의 목적을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산업교육사상에 근거한 구체적인 종합계획은 결국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비전은 지금도 우리곁에 숨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평생 교육 사상

남강은 어릴때에 조금 배운 한학외에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가르쳐 달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고, 실제로 남강보다 사회경험이 적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일지라도 항상 그들에게 배우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들이 많다. 또한 52세의 나이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수학한 것을 보면 그의 향학열과 교육에 대한 자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신구약, 교회사, 교리문답, 설교학, 교회법, 한국사, 서양사 등을 배웠으며 거기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오산학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영적 지도자가 될 것을 믿어 한사람 한사람을 성심껏 대하고 지도자로서의 품격을 갖추며 살 것을 당부하면서 함께 공부에 정진하게 되었다. 특별히 그의 '의' 사상은 신학교때 부지런한 학습을 통해 터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구약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굳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의를 향하여 "나음 나음 나아가라" "점진적으로 나아가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나갈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결국 계속해서 배움에 대한 노력을 늦추지 않고 부단히 배우며 살았던 그를 향해 사람들은 만년청년이라고 일컬었으며 쉬임없이 향상하고 끊임없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며 배우고 구현했던 인물로 지금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평생 학습인으로서 겸허하게 학습하는 생활로 일관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결 론

교권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남강의 교육 사상과 그의 실천적인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며 지금도 우리를 향해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하겠다. 남강이 지녔던 교육 진흥사상, 기독교 교육사상, 실천교육 사상, 산업교육 사상, 평생 교육 사상은 지금도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상적 준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실천인으로서 그 평생의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진실되게 헌신했던 남강 이승훈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들을 깊이 반추해 볼 수 있을 뿐만아니라 그것을 통해 교육자로서 우리들이 어떻게 준비하며,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교육적 삶의 방향성을 얻게 된다. 만약 우리가 성실했던 교육자 남강의 삶을 전인으로 배우고 따를 수만 있다면 우리의 교육의 장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들은 분명 맺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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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에 관한 예화1  (0) 2014.08.12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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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8장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들어가는 말

오늘 이야기는 솔로몬 통치의 절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40년간의 건축이 마무리되고, 이제 성전 봉헌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7장에서는 그 성전의 모양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고, 특히 두로사람 히람의 도움과 원주민의 노역으로 완성된 성전과 솔로몬성 건축은 총 12만명의 인원이 동원된 거대 공사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성막에서 시작해 성전에 이르기까지 언약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 솔로몬에게 깊은 영감을 주며, 솔로몬의 연설과 기도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8장의 내용인 것이죠.

가톨릭교회는 성당 안에 예수님의 피와 몸을 상징하는 성체를 모신 제단을 중심으로 성당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마리아에게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고, 미사당 입구 옆에 있는 성수에 손을 넣어, 죄를 정결히 하는 예식을 갖춘 후 중앙 앞 쪽에 있는 제단을 향해 예를 표합니다. 또 이들의 성전 즉 교회관은 우리와 차이를 갖게 되는데, 가톨릭교회는 무형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무리인 교회뿐 아니라 눈에 드러난 교회당을 교회로 인정함으로써 성전관리와 건축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날 한 개신교 목사님이 가톨릭 신부님의 초대로 성당에 놀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날 목사님이 신부님께 말합니다. “성전은 우리 몸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인과 교회당을 동일시하는 것 같아 불편해보입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말합니다. “저희들의 모든 예식과 건축들은 철저히 교육적이고, 철저히 성사적입니다. 신자들은 성당 안에 들어오는 순간 예수님 시대에 드렸던 정결례를 경험하게 되고, 중앙에 모신 성체를 통해 이곳이 그리스도의 몸 된 곳임을 기억하게 되죠. 또 마리아와 십자가를 통해 그가 육신을 통해 오신 여자의 아들이며, 또 고통을 당해 돌아가신 분임을 알 수 있죠. 제가 보기에는 개신교인들이 이 모든 상징들을 너무 제거해서 도대체 무엇을 믿는지 신자들이 당황스러워 하진 않을지 걱정되더군요.”

 

1. 바른 성전 신앙

그런데 우리 개신교회는 성전의 의미를 이러한 건물에 두지 않고, 본질적으로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그 곳이 바로 성전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면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성전, 성막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임재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말씀으로 임재하십니다. 모세와 여호와 하나님은 대화를 하셨습니다. 또 십계명을 주셨죠. 그리고 성막과 성전에는 반드시 그 중앙에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말씀을 듣는 백성이라야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뜻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교회에서도 세 가지 말씀을 모십니다. 하나는 성경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성찬례를 통해 모시는 예수님의 몸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신령한 예식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선포되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말씀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영으로 임재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 영으로 임재하십니다만.. 보다 구체적인 영으로의 임재를 말합니다. 성경에는 구름 가운데 임재한 하나님에 대해 여러 번 표현됩니다. 왕상8:10에도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눅21장 묵시록에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만 이것 역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의미한다고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단들의 인구름이니 떼구름이니 하는 말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쨋든 우리가 12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예측할 수 있습니다만.. 12절에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말씀하셨사오나..” 를 보시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한 광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을 위해 어둠에 은혜롭게 둘러 싸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다는 믿음이 있던 당시에는 이처럼 신비로운, 알 수 없는, 무소부재의 하나님 존재를 ‘어둠 속에 광채’로 표현했던 것이죠.

그래서 제사장들은 그 영광의 임재를 경험할 때 감히 감당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재로 인간에게 드러나셨고, 기꺼이 인간이 지은 성전에 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정성으로 하나님을 바라면 우리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임하시는 줄 믿습니다. 더럽고 죄 많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은 기꺼이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마음껏 자신을 우리를 통해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크게 역사하는 이치는 마치 세상에 가장 큰 절망을 만난 사람에게 발견되어 지는 소망의 하나님과도 같은 것일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면서 우리를 통해 점점 먼 곳까지 그 은혜를 드러내길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그 일들이 순조로울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차분히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늘려야 할 것입니다. 가만히 주님을 바라보도록, 우리 안에 또 주변에서 그리고 성서와 교회에서 찾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 기도하고, 또 하나님의 영을 정당하게 초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믿음을 보시고 반드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신비한 체험을 통해 신자는 다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비 안에 충분히 머무십시오. 그리고 머물렀다면 행동하셔야 합니다.

세 번째, 사건으로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사건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하늘은 열렸습니다. 불신앙과 죄악으로 살던 인생도 예수님을 영접하니까 하늘이 열렸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의 구원의 사건 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쓰러져 가고 죽어가는 교회들이 다시 영적으로 각성할 때 그 회복의 사건 중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던 것입니다. 영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이자, 하나님께 사용되고 있다는 증표인 것입니다. 또한 영은 내가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초대되는 것이고 사귐이 있는 비밀이 있기에 우리 안에서 날마다 그 모양과 성질을 달리하며, 성장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까운 곳에서부터 역사하는 영은 점차 먼 곳으로 역사되어야 합니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이웃과 이웃 나라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나로부터 시작해서 사회를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죽음위에 임재하시고, 하나님은 사랑의 행위 위에 임재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간절히 환자의 고침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환자의 아픔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늘 우리의 사건들을 통해 또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드디어 성전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성전이 참 성전이 되려면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셔야 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이 완공된 후 언약궤를 지성소로 메어 왔습니다. 그리고 성전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게 임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하나님이 온전히 좌정하셔서 왕으로 사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 가장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고 모셔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 성전을 통해 받는 복

 

오늘 읽은 본문은 솔로몬은 웅장한 성전을 지었지만 그 성전이 하나님을 모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왕상8:27~30 읽어볼까요) 그래서 그는 이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들으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복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또 전쟁에서 패했을 때나 이방에 잡혀 갔을 때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기도대로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이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하루 세 번 기도할 때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 것은 이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면서 너무 좋아서 7일에다 7일을 더해서 14일간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한 성전에는 모든 백성들의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이 넘쳤습니다. 봉헌식을 마치고 가는 백성들에게 솔로몬은 축복하였고 백성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였습니다.

 

마무리

하나님의 임재는 나로부터, 내 가정으로부터, 내 교회로부터, 내 나라로부터 점점 멀리 나타나야 합니다. 주변의 이방인들에게도 솔로몬의 성전은 기도의 처가 되었습니다. 멀리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상상하며 하나님께 기도만 하여도 응답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왜 교회에 나와야 할까요? 만일 이 건물이 필요 없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가정이나 광장 같은 곳에서만 모여 예배를 드리고 흩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바로 믿지 않는 이방인과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구암교회가 용지 지역민의 기도의 둘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망의 둘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목사 없는 교회라서 못 나오겠다고 하는 분이 계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니 나오시라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시험을 당하지 않고, 멸시를 당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모든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는 분임을 늘 잊지 마시고, 가까운 곳에서 점점 먼 곳으로 우리의 믿음과 축복과 성전의 신앙이 날마다 퍼져 나가길 바랍니다. 끝..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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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는 양들과 더불어 산다.(요10:11~15)

먼저 감사합니다.

들어가는 말

히브리어로 학카톤은 막내, 최하급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학카톤은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갔을 때 다윗을 부르던 아버지와 형들의 말이고, 소외된 이웃을 바라보며 지어낸 세상의 말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초원이라 불리는 소외의 자리에서 목동을 했고, 모세 역시 나이 마흔에 떠난 광야에서 목동을 했습니다. 누구도 찾지 않는 소외된 자리에서 오직 양들만을 돌보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그 소외의 자리에서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새끼 양 한 마리를 되찾기 위해 사자와 곰을 상대로 물맷돌을 던질 때 그를 찾아가셨고, 모세가 40년이나 성실히 목자의 삶을 살았을 때 비로소 그에게 찾아가신 것이죠.

이와 같은 사실은 들사람에 불과했던 히브리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무엇인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시고, 사용하신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고,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1. 소외의 자리에서 부름 받은 종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선하다는 것은 좋다, 온전하다 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선한 목자란 삯꾼과 달리 양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으며, 자신의 목숨도 돌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장로님이 오랜 시무로 스트레스가 쌓여, 휴무를 하실 때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교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일 년이란 시간을 보내실 때 불현듯 마음에 이런 감동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성도들과 함께였을 때는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기만 하더라도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성도들과의 거리를 두고 떠나자, 마음에 한없는 허무함이 밀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힘들어했던 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향한 계획이자, 훈련이었음을 다시 감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장로라는 직분은 늘 성도들과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성도들의 대표로서 매우 명예롭고 의미 있는 직분인 동시에 일반 성도들이 알 수 없는 지독한 소외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일을 두고 남모르게 하나님께만 물어야 할 일이 적지 않으며, 앞에서는 칭찬하지만, 바로 뒤돌아서 자신들을 욕하는 성도들을 경험하기라도 한다면 그 날 밤은 억울함에 잠도 못 자는 자리인 것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쉴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소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일 것입니다. 은혜는 수고할 때 부어집니다. 은혜는 인내할 때 부어지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작은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목자는 양과 더불어 살며 힘을 얻어 살아갑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 목자는 매일 양들을 돌보고 먹여야 하는 평범한 일상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교인을 심방하고, 돌보는 일이 그러한 것이죠.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해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돌볼 때 기쁨을 얻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개성 없어 보이는 양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점차 양들의 몸에 드러난 상처와 흠으로 양들을 구분하게 됩니다. 외관을 보면 모두 하얀 양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겪은 상처와 아픔은 이들을 돌보는 목자의 관점을 다른 것으로 바꿔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목자는 양들과 더불어 살며, 그들의 상처와 아픔으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할 때 양들도 목자를 기억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할 때 성도님들도 여러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목자는 양들을 지켜야 하는 특별한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목장 안에 숨어 들어온 이리떼를 물리쳐야 하며 양들을 도둑질하거나 물어가는 일이 없도록 울타리를 보수해야 합니다. 동시에 사자나 곰이 양들을 채 갔을 때 목숨을 걸고 양들을 되찾아 와야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목자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닙니다. 지팡이는 들짐승을 겁줄 때 사용되거나 양들의 키를 살필 때 제는 자로도 사용됩니다. 한 마리 한 마리 그 수를 세어 지팡이에 세기기도 하며, 무엇보다 지팡이는 구렁에 빠진 양들의 목을 걸어 양들을 구원해내는데 사용되는 요긴한 물건인 것입니다. 목자는 이리떼를 물리쳐야 하지만, 동시에 양들을 건져내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특별한 때에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떤 능력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할 때 한 마리의 양을 얻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양이 울타리 안에 있다고 한 들, 울타리 안에 노략질 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 목장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자는 틈틈이 힘을 키우고, 목장의 상황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일의 결정에 있어서는 교회를 위한 선택을 먼저 해야 하고, 반대로 작은 한 사람 한 영혼을 위해 교회를 설득해야 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자는 복잡한 현대사회 안에서 퇴색 되버린 옛 유산이 아니라 오히려 복잡한 현대 사회에 더욱 필요한 사명이 되었습니다. 목자는 소 떼에 마음을 두며,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이 자세를 회복할 때 속한 교회가 날마다 부흥하고 건강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목자의 자세와 본질입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는 선한 목자입니다. 저는 이 말 속에서 예수님으로부터의 어떤 스트레스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는 양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 놓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었지만, 그것이 곧 스트레스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저만 보더라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등지고 멀리 외곽으로 외출을 나갈 때도 있었습니다만, 어느 순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목자는 양과 더불어 산다!

 

장로는 매우 귀하고 존엄한 직분입니다. 교회의 지도자이며, 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일인지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나를 몰라주는 성도님들 때문인 경우가 있음을 돌아봅니다. 교회의 사정을 속 시원히 이야기하지 못한 체 일을 진행하는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이를 오해해서 장로님들을 힐난하는 성도님들을 대하실 때 낙심도 됩니다. 그러나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 말씀과 같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주님 안에서 이뤄진 일이라면 반드시 적지 않은 성도님들이 여러분의 뜻에 동의하고, 언제든지 함께 할 것이란 사실을 믿으셔야만 합니다.

내가 먼저 성도님들을 믿을 때 믿음이 내게도 돌아오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먼저 믿어주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따르거나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원하는 기준은 때로는 매우 높고, 부자유스러워 보이지만, 돌아보면 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속사정을 이야기한다면 이해되지 못할 문제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기꺼이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면 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면 서로의 음성을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먼저 사랑하고, 먼저 다가가는 목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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