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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30 20140831신앙의 완주(왕상11:1~13)낮예배

신앙의 완주(왕상11:1~13)

 

들어가는 말

인생의 경주를 완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들 말씀합니다. 잘 달리는 것처럼 보이다가 마지막에 넘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프랑스 총리였던 피에르 베리고부아는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으로 프랑스의 총리가 된 인물입니다. 철도 수리공부터 온갖 힘든 일을 하다가 정치에 입문한 그는 총리가 되어 강력한 프랑스를 재건하는 일에 큰 공을 세워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청렴과 정직을 명예로 삼은 그는 나중에 무이자 거액 대출 스캔들이 터지고, 이로 인해 총선에서 참패하자 크게 낙심하여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인생 밑바닥에서 최고 성공의 길을 달렸지만, 마지막 순간은 모든 이에게 안타까움을 남긴 사람인 것이죠.

신문기자였던 찰스 템플턴이란 사람은 어느 날 인생에 회의와 죄책감에 사로잡힌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어려울 때 간절히 소원하는 가운데 만난 예수님을 통해 그는 다시 삶에 대한 감사를 통해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평소 기자 생활을 하며 세상에 대해 큰 절망을 경험한 그가 당시 빌리 그레이험이라는 목사님을 따라 다니며, 전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하나님과의 작별:내가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는 이유”라는 책을 쓰고는 갑자기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게 된 것이죠. 세상에 절망한 그가 이어서 사람에게 절망하고는 신앙을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결국 치매로 인생의 모든 것을 잊고, 살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아름답게 가꾸고, 지키며, 신앙의 완주를 이루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생각보다 신앙을 시험 들게 하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신앙을 잃고, 그저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그렇습니다. 더구나 신앙을 잃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는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자신들을 지켜 줄 성벽과도 같은 이권과 고집을 더욱 고집스럽게 쌓아 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라는 한탄과 ‘과연 나는 이와 같은 불신앙에서 자유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반드시 완주해야 합니다. 넘어지더라도 아주 엎드려지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솔로몬의 전후반전

오늘 읽은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솔로몬의 삶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흥왕했던 전반기 20년과 어두웠던 20년의 이야기를 살펴봄으로 신앙의 완주를 결단하는 귀한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통치 전반기는 ‘건축과 보물, 지혜’로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거룩한 성전을 짓는 일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신의 광영을 열국에 높이기 위해 화려한 궁전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개의 건물을 짓는데 20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리고 건물이 높아질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솔로몬의 영광도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두 여인이 한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우길 때에도 문제를 해결했었고, 좁고 척박한 땅에 위치한 이스라엘 나라를 부요하게 만드는 길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실행에 옮긴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해양중계무역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무역으로 재물을 쌓았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에 기술자가 없을 때는 원수라 할지라도 손을 벌려 그들의 기술과 재능을 배웠습니다. 실제로 사해와 홍해가 만나는 곳에 에시온과 게벨이라는 항구를 만들어 동방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고, 두로 지방의 항구를 통해서는 위쪽에 지중해와 연결하는 길을 열어 이스라엘이 역대 경험하지 못한 부유를 갖게 했던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로 이토록 훌륭한 왕으로 통치하던 솔로몬은 후반기에 들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의 달라진 모습을 정리하면 “하나님 없이 스스로 부국강병을 이루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그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 삶의 지혜와 기술을 배웠다면, 나중에는 신앙을 잃고 삶의 술책과 테크닉이 자신의 삶을 주관하도록 내어준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 옛 것을 모두 유치하다고 치부하는 것처럼 신앙에 있어서도 솔로몬은 하나님의 손을 놔버리고, 자신의 주관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는 특히 다음의 두 가지 행동으로 이런 자신의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먼저는 주변 나라들과 ‘결혼동맹’을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나라’가 아닌 ‘동맹국들의 보호를 받는 나라’로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결혼 동맹은 20여민족과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혼’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혼한 이방여인을 위해 그 여인의 나라의 풍토에 맞는 궁전을 새로 짓고, 우상제단을 건축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궁전건축은 국고를 탕진하도록 하였습니다. 우상제단은 단순한 건축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 속에서 갖가지 축제와 행사가 이뤄지게 하였고, 왕과 신하 모두 이 행사에서 자유 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은 점차 죄에 대해 둔감해지고, 이와 같은 문화와 불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한 가지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품이 넓은 것처럼 행동한 들.. 그것은 우상숭배의 행동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탈을 쓰고는 실은 힘과 안전만을 도모하는 일들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무분별하게 품는 것이 아닌, 분별하여 품는 지혜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솔로몬은 비록 우방국을 통해 안정은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날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기도합니다. 복을 받았습니다. 좋은 집도 갖습니다. 사람도 고생해졌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왠지 예전과 같은 뜨거움은 사라집니다. 안일하게 됩니다. 야성이 없어집니다. 손에 빠른 인간적인 수고가 기도를 대신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로, 뜻으로, 영적인 두려움과 세상을 대적하는 신앙은 사라지고, 점차 솔로몬과 같이 ‘능력있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부모님의 부르짖는 신앙은 배우지 못한체 지금 부모님의 ‘수단’만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몰락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부로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길에 자신을 세워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나도 모르게 배워버린 세상이 불타 없어지고, 다시 하나님께 사용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대가 지불없이 배울 수 있는 신앙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가 하나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도록 내몰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물질이나 명예의 곤란도 당하도록 내몰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곤란하게 했던 것들이 도리어 힘이 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아,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는구나.. 더 이상 종노릇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신앙의 선배들이 어떤 심정으로 믿음을 얻고, 은혜를 입게 되었는지 나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배들이 자라게 한 나무의 가지와 줄기와 뿌리를 잘라, 자기 땔감으로 쓰면서, 옛 선배들의 일화만을 자랑하는 어린아이가 돼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단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면, 더 이상 옛 선배들의 고난을 팔아 자신의 지적희락이나 영광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일부로라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길에 자신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성경 속에서 일어난 기적과 사건이 오늘 나의 사건과 기적이 될 줄로 믿습니다.

 

자, 두 번째 솔로몬의 잘못은 ‘전차부대’의 창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늘 주변국의 전차부대에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 초창기에 가나안땅에서 내쫓지 못한 부족은 대부분 기마부족이었습니다. 이들은 사사시대에도 사울왕때에도 반복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차부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말’이 필요합니다. 말은 가나안 땅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집트, 애굽땅에서만 구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에 세워질 왕에게 경고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자를 많이 가지는 것”과 “말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이 떠난 애굽 땅을 말을 얻기 위해 다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북방과 남방에 매우 큰 전차부대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그는 든든한 국방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매우 당연한 부국강병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신앙과 능력 있는 백성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때는 부국강병을 이룬 솔로몬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주변국의 압제와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싸워 나가던 모세와 여호수아, 사사들의 시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닐 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되어갔고, 또 하나님 안에서 된 자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 이만하면 됐어! 너야말로 나의 전사이고, 나의 종이며 친구라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던 때가 바로 그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봤더니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봤더니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바라봤더니..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자기 힘만을 의지하는 문화가 판치는 세상문화가 되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이후로 그의 자손들이 경험한 남북분열이 바로 이런 문화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패역한 것은 분열을 만듭니다. 죄가 나라와 공동체에 들어오면 분열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욱 의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모든 분열의 악한 영이 이 시간 떠나가길 소원합니다. 신앙은 힘을 가지는 것에 있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곤고하고 낮은 곳에 처해야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낮고 곤고한 곳에서 여러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을 향해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달라고, 하나님께서 변화시켜달라고, 하나님께서 분명 가만 두지 않으리란 믿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솔로몬 이후 남북이 분열되고 고작 40년이 지나는 동안 왕이 7번이나 바뀌고, 그중 3명이 죽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만과 패역한 신앙에서 자유해지시길 바랍니다. 솔로몬은 이를 이루지 못해 믿음의 지조를 버리고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늑대가 되버린 것입니다. 그는 온 나라를 우상숭배로 더렵했습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도 그랬습니다. 윗니가 시린다고 아랫니가 시리랴? 라는 에스겔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좋은 것을 받고도 나쁜 열매로 나라와 아들을 망친 것입니다. 그는 그 명석함으로 자신의 힘을 의지하다 나라 전체를 어려움에 빠트렸습니다. 지도자가 자기 힘을 의지하기 시작하면, 백성들은 모두 제 갈 길을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백성들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야말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나가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리고 왕의 보좌에 앉았습니다. 이 날의 영광은 모두의 기쁨이자 축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저와 여러분이 처음 신앙을 하기로 결단했을 때 하늘에서 크게 기뻐하시고, 잔치가 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처음 받은 것을 지키지 못하고, 점차 자신의 힘을 의지하더니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부요하게 하기 위해.. 점차 신앙의 완주를 이룰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음을 이 시간 나눴습니다.

솔로몬은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 없이 더 높이 날아오르려는 순간 추락하여 결국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철저히 하나님과 한 호흡을 이루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완주는 그 호흡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불편을 자처하는 일이고, 하나님 때문에 형통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각자에게 주어진 단 한번 뿐인 삶을 솔로몬과 같이 낭비하지 마시고, 하나님 안에서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노력하는 또 완주하시는 멋진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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