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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7 20140817기준과 포용이 있는 신앙(왕상15/)

20140817기준과 포용이 있는 신앙(왕상15/)

들어가는 말

한 여성이 심리상담사를 찾았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성격이 평소 무덤덤한 탓 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요즘에 그 정도가 지나쳐 상담사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제 부모님이 교통사고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별로 슬프질 않는 거에요.. 그때는 제가 집 떠나온지 오래되어서 그런가 했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거에요. 회사 생활도 쉽지는 않지만, 다른 동기들이 다 그만둘 때 저는 그래도 잘 버티고 왔거든요..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제 아이들이 잘못된다고 해도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다. 선생님. 제 문제점이 뭐죠?”

정상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인생의 중요한 때에 늘 자신을 괴롭혀왔지만, 정작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이제야 부딪치기를 원했던 것이죠.

 

일단 이 여성은 어렸을 때 반복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지킬 수 없었던 나약한 자신. 그런 불행을 매일 경험하면서 점차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정은 따듯함이나 관계가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그녀에게는 가족을 지킬 의무만 있고, 감정적인 교류나 올바른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이 아니었던 곳이죠.

그녀는 어린 나이에 내면성장이 멈추고만 것입니다. 그리고 상담사는 다음과 같이 해결점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당신은 아버지에게 그 부당함에 대해 말했어야 합니다. 왜냐면 당신은 불행을 외면하는 능력은 남들보다 월등하지만, 문제와 부딪쳐 자신과 가정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제이자 심리학자인 죤 브래드 쇼는 ‘가족’이란 책을 통해서 한국에 알려진 분입니다. 그는 앞선 이야기와 같은 개인의 문제는 결국 가족 전체의 문제가 그 개인을 통해서 드러난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는 상처로 인해 우리 안에 있는 자라지 못한 인격. 그 내면아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개인의 문제는 오로지 가족들 간의 문제 해결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문제 해결의 책임을 묻던 태도가 아니라 한 가정에게도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공동체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공동체가 반대로 일원들의 삶을 망칠 수도 있음을 이런 적용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병든 유대공동체와 왕정가문에서 태어난 아사왕

오늘 읽은 본문은 사울왕에서 솔로몬까지 하나를 이루었던 이스라엘이 분열하여,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지역으로 갈라지면서 남쪽에서 왕이 된 아사왕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국가의 역사 중에는 아사왕과 같은 하나님께 충실했던 역사보다 우상숭배와 범죄의 흔적이 더 많이 기록되어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솔로몬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복을 누렸던 이스라엘이 그가 죽고나자 결국 남쪽 2개 지파에는 르호보암왕이 북쪽 10개지파에는 여로보암 왕이 세워지면서 본격적인 분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원래 하나님과 약속한대로 하나님의 법도와 신앙을 잘 지켜내지 못하고, 솔로몬 때로부터는 우상숭배와 믿지 않는 이방여인과의 결혼 그리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가 이스라엘 왕정가문과 나라를 병들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야말로 왕정가문이 비신앙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브래드 쇼에 말대로라면 한 번 타락한 가정이나 공동체는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적용할 수 있겠죠.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사는 달랐습니다. 는 혼란 가운데 올바른 신앙을 지켰습니다.

 

아사의 성장환경은 원래는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의 법도로 다스려져야 하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리고 공공연히 안식일마다 그런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지고, 회당과 학교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이 가르쳐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였던 아비얌은 그런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사가 경험했을 할아버지 르호보암 왕 역시 이와 같은 의무를 다해야 할 분이었습니다. 더구나 할머니 마아가는 이스라엘의 시조인 다윗왕의 아들인 압살롬의 딸이었습니다. 본래 다윗의 후손이고, 하나님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할아버지 르호보암, 할머니 마아가, 아버지 아비얌은 모두 이런 하나님의 법도와 의무를 어겼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져야 할 이스라엘 땅에서 이 분들은 공공연히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할 산당과 성전 뜰에 가증스런 이방신상과 아세라 나무들을 심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딸 마아가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왕국을 장악하고는 나쁜 일만을 행했습니다. 그야말로 도무지 희망이라곤 없을 것 같은 곳이 바로 이스라엘이고 왕정가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인 아사에게 신앙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어긋난 기대일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사는 왕이 되자. 할머니이면서 스스로 태후(왕의 어머니)로 높여 기득권을 놓지 않고, 혐오스런 아세라 상을 만들었던 할머니인 마아가를 폐위시킵니다.

 

이처럼 아사는 부정적인 가족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 신앙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했음을 말해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본문 11절에서 아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삶이란 바로 “행동의 기준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지배하고 있는 모습”임을 말합니다.

아사가 부정적인 가정환경과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도 하나님을 두렵고 귀하게 여기자 하나님도 그를 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자신을 높이는 자를 높이시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낮추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행히 한 개인이 하나님 없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들, 하나님 없이는 그의 가문이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마치 구멍이 뚫린 항아리처럼 사람이 모든 것을 쌓았다고 안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가져가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일을 매우 자주 목격합니다. 석학인 이어령 교수님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이유는 어떻습니까? 명예와 덕망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에 갑자기 불행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딸의 암선고입니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절망의 시기에. 딸도 아빠도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병고침의 기적이 교수님과 가정의 삶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교수님은 지금도 인간의 지식의 한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숭고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노령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짓밟힌 자신의 영광을 되찾으러 오시기 전에 아사와 같이 마음을 잡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쉬고/

두 번째로 아사왕이 부정적인 가족과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 신앙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4절 말씀입니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더라.”

온전함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함을 말합니다. 흠이 없음을 말합니다. 산당은 원래 각 지역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던 처소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상숭배의 장소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사왕은 왕가의 개혁을 통해 자연스레 개혁의 물줄기가 아래로 흐르도록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시간을 준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다시 산당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사왕은 ‘한 사람의 법칙’을 알고 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친할머니라 할지라도 폐위시키는 적극적인 개혁을 통해 결국 하나님 앞에 ‘책임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사람과 달리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한 사람’의 원칙에 있음을 살펴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만연한 죄악을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감당하시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죄악이 한 사람을 통해 들어온 것처럼(롬5:12) 이제는 한 사람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게 되었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성난 유대군중들과 로마병사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사도신경은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던 쥐와 같이 ‘본디오 빌라도’라는 책임 있는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실 때 특히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의 책임을 매우 중요하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후에 아사왕도 이 모든 일에 책임 있는 마아가의 폐위를 통해 신민 앞에 책임 있는 정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살해하지 않았으며, 다만 백성과 하나님 앞에 두려운 모범을 세워 산당을 개혁하고 국가 운영의 권위를 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사가 누구입니까?

아사왕은 부모님과 할머니의 범죄를 목격하며, 끊임없이 상처를 받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우한 신앙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놀라운 추진력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적으로는 아사왕과 같이 어릴 때부터 불행한 일에 노출된 아이는 상처와 좌절때문에 성장해서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실천하지 못하거나 중요한 일에 대해 결정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성장하면서 융통성 있고 원만한 성격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옳지 못한 일을 보고도 이를 저항하지 못한 상처 때문에 스스로는 깊은 무력감과 결정한 일을 끝까지 추진할 힘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내면아이를 극복할 경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실천하며,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사왕도 하나님 신앙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극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온전함 안에는 “내 안에 있는 내면 아이와 상처와 죄악을 극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포용력을 갖추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안에서 뜻이 바로 서면, 다른 모든 일을 끌어안기에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이죠.

 

아사는 하나님 신앙을 통해 내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포용력을 갖춘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아사왕은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구원 받은 증거인 정직함과 온전함으로 나라를 다스려 남 유다를 크게 안정시켰습니다.

 

나가며...

여러분은 앞서 말한 여인의 예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상담사는 그녀에게 “옳지 못한 일에 대한 극복”을 요구했습니다. 동시에 관계를 회복할 끈 역시 그녀에게 있음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살인자의 누명을 쓴 아들을 둔 어머니와 아들이 감옥에서 면회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면회장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만 보일 뿐, 범죄자와 일반인의 구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인간이기 때문에 죄를 짓지만 결국 상처를 줬던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부모는 부모이고, 할머니는 할머니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상처는 그 관계를 풀 열쇠 역시 나에게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저널리스트인 필립얀시는 ‘단단한 진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인간은 부패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결국 그가 판단하는 인간도, 세상을 끌어안아야 하는 이유도 모두 하나님 때문에 품어야 하고, 끌어안아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물론 그의 책은 하나님 안에서 진리에 대한 단단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준이 없는 무조건적 포용은 무책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반대로 날카로운 기준만 있고 포용적이지 못한 것은 무자비와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싫어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지켜내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방법은 어쩌면 어렵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준을 세우십시오. 그 다음은 있는 힘껏 여러분의 이웃을 끌어 안으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이 반드시 아사 왕과 같이 회복되고, 복을 받을 것입니다. 아사왕이 보여준 모범이 우리 신앙의 귀한 기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끝..

Posted by 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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