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돌짝

카테고리

필통 (34)
풋살이 (2)
구암일기 (0)
목회이야기 (0)
딸랑구 (0)
구암설교 (30)
자료실 (2)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14.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태그목록

최근에 올라온 글

하나님의 선물을 나누어요(고전12:1~11)

 

들어가는 말>

옛날에 로마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로마 황제는 어느 날 골머리가 아팠어요. 다스려야할 식민지들은 많은데, 마땅히 이 식민지 백성들을 굴복시킬 생각이 나지 않아서죠.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좋은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황제는 각 식민지에 다음과 같이 전하도록 했어요. “몸은 각각 다른 역할이 있는데 식민지인 너희들은 손과 발이니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여 머리되는 우리 로마제국을 먹이고, 영화롭게 하거라!”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에 반대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과 몸의 모든 지체가 다 소중하니 서로가 서로를 아껴야만 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법을 따를 수 없소!

메시지>

오늘 이야기는 신비롭고 놀라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은사)에 관한 이야기에요. 성경에 보니까.. 어떤 은사든 다 한 성령님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역시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따라서 어떤 사람은 지혜의 말씀을, 지식의 말씀을, 병을 고치거나 믿음을, 예언하거나 영을 분별하는 능력 등을 갖기는 하겠지만, 이 모든 것은 ‘차이’일 뿐 계급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11절 이야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준 것일 뿐이다!

우리 친구들에게도 하나님은 여러 가지 능력을 주셨어요. 어떤 친구는 힘이 세고, 어떤 친구는 머리가 좋고, 어떤 친구는 성격이 좋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하나 하나를 사랑하시고, 여러분에게 귀한 선물을 하나씩은 다 주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하나님께 기도해보시길 바래요. “하나님 저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나요?” 하나님 저도 훌륭한 목사님이나 선생님 찬양인도자와 반주자가 되게 해주세요! 세계를 다니는 선교사나 훌륭한 장로님이 되어서 교회를 섬기는 것도 좋은 일이겠죠?

^^ 자, 이제 전도사님 따라서 오늘 읽은 말씀 하나를 외워볼까요? 11절!

말씀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1)×3번!!!

자 그럼 퀴즈 문제~>이 모든 능력은 누가 나눠 주신 것일까요?(한 성령, 한 하나님)

기 도~>성령의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쓰임받도록 광고>자체강습회, 성경학교 

Posted by 돌짝
, |

꿈이 있는 교육(마10:24~33)

들어가는 말

우리 교단 교회 중에 수도교회에서 시무하셨던 최태섭장로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오산학교를 졸업하신 분입니다. 이분의 일화로는 6ㆍ25 전쟁 당시, 9ㆍ28 수복이 이루어져 전쟁이 끝났는가 싶던 때였습니다. 페허가 되다시피한 서울 땅에서 청년 최태섭은 친구로부터 단무지를 군대에 납품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청년들을 위해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으로 그는 덜컥 그 일을 해보마고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거래하던 은행에서 얼마간의 돈을 빌려 조그만 단무지공장을 차렸습니다. 열심히 단무지를 만들어 팔다 보니 약간의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 갑자기 전세가 급변하여 압록강까지 올라간 우리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불안해진 사람들이 다시 짐을 싸고 하나 둘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최태섭은 짐을 꾸리기 전에 은행으로 부랴부랴 달려갔습니다. 은행은 이미 업무를 중단하고 모두 피난을 떠나고 한 사람만이 남아 뒷일을 수습하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매우 초조한 기색으로 떠날 준비를 하느라 최태섭이 다가오는 지도 몰랐다. 최태섭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빌린 돈을 갚으러 왔소이다." 그제서야 은행직원이 별사람 다보겠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이 난리통에 돈을 갚으로 왔다구요? 지금 보다시피 은행업무가 마비됐으니 다음에 오시오." 은행직원은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나가려고 했습니다. 최태섭은 얼른 그의 팔을 붙들었다. "나도 피난을 가려는 중이요. 이 전쟁에 내 목숨도 어찌될 지 모르는데… 그러니 일단 돈부터 받아두십시오." 은행직원은 하는 수 없이 돈을 받고 영수증을 써주었습니다. 영수증을 호주머니에 넣고 은행 문을 나서자 멀리서 쿠르릉 포화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고 합니다.

후에 최태섭은 제주도에서 군부대에 생선을 납품하는 원양어업에 뛰어들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돈도 담보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업자금 융자를 신청하기 위해 은행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은행장이 1·4후퇴 때 빌린 돈을 갚고 피란을 간 이 기업인을 알아보고 결국 무담보로 2억원을 융자해주었습니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만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최태섭, 그가 바로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의 기적을 이룬 주인공입니다.

 

1. 기독교 정신의 교육의 중요성

그런데 이런 그를 만들어낸 데에는 바로 기독교 정신 안에서의 교육 덕분이었습니다. 우선 그가 졸업한 오산학교는 1907년 장로교인이었던 남강 이승훈장로님이 세우신 학교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학교는 조선이 나라를 잃었던 시절 무력항일운동과 자강항일운동의 바람이 불었을 때, 자강운동 즉 조신인민의 역량을 키우자라는 취지로 세운 학교였습니다.

이승훈장로님은 학교설립의 뜻을 그리스도의 뜻을 따름으로 정하고, 정주 지역의 인물들을 양성하게 됩니다. 특히 장로교 3대 지도자였던 통합측 한경직목사, 합동측의 박형룡 목사, 기장측의 김재준 목사님이 바로 이 학교 출신이며, 시인 김소월 선생을 비롯하여 최태섭 장로님 등이 이 학교 출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독립선언서 33인중 한 분인 이승훈장로님의 좌우명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하게 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그의 근육과 뼈를 고달프게 하며(勞其筋骨),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餓其體膚), 그 자신을 궁핍하게 하며(空乏其身), 그의 일이 그가 하고자 했던 것과 어긋나게 한다..(行拂亂其所爲), 그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인내를 기르게 해서(所以動心忍性), 그가 할 수 없었던 일까지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曾益其所不能). ”

 

장로님의 고진감래의 좌우명은 기독교의 인내와 연단의 신앙과 같은 것이며, 오늘 우리 교육이 잊고 있는 다음의 몇 가지를 주목하게 합니다.

 

2. 교육의 방향들

① 아이들에게 가치는 반드시 인내와 연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벌써 스마트 폰을 가지고 놀게 됩니다. 바쁜 맞벌이 가정일수록 이런 정보매개물에 쉽게 노출이 됩니다. 어느 날인가 명절에 친지들을 만났습니다. 그날 밤 늦도록 어린이 만화 프로그램이 24시간 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아니 이 시간에도 자지 않는 아이들이 있나.. 밤에는 더 잔인한 걸 하네.. 그러자 사촌동생들이 말합니다. 부모님이 늦게 집에 돌아오니까.. 밤새도록 티브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많은 성장을 이뤘지만, 그것이 곧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뜻이 아님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의 세월호 사건이나 대중매체들은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소모되도록 노출되었을 뿐 아이들 스스로 세상을 이끌어 갈 주체로 성장시키는데는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미취학 시절부터 영어나 수학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 이 끝없는 줄서기에 우리의 아이들은 소모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을 삶을 건강하게 지탱하고, 극복할 수 있는 인내와 끈기는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다른 것입니다. 여전히 대안인 것입니다. 신앙은 자세입니다.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의 달콤함이 아닌 또 눈동자가 풀린 체 세월을 보내는 일에 낭비되지 않도록 늘 하나님 앞에 깨어 있는 살도록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신앙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먼저 기도하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 오늘 나의 모습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답습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내 삶의 주인 의식은 오직 그리스도의 종 된 자세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늘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삶은 자연히 인내와 연단을 받아들이고, 큰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먼저 열심히 자질을 기르고, 아이들에게 덕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② 아이들에게 높은 뜻을 가르쳐서 스스로 잔가지를 쳐 나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를 망치고 싶으면 잔소리를 자주 하라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이들로 분노하게 만들면 이미 그 아이의 인생을 반은 망쳤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앙지도가 되었던 가정 지도가 되었던 어느 정도의 훈육과 지도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교육은 아이들에게 높은 뜻을 분명히 가르쳐서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다듬어 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던지, 아이들이 믿음 안에서 비전을 갖도록 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다듬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축구선수라면 이영표집사님과 같은 예를 들면 될 것이고, 정치인이라면 만델라나 목회자라면 손양원목사님이나 김재준목사님과 같은 분을 소개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가르쳐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강아지똥이라는 아동집을 만든 권정생 선생은 평소 예수님의 삶을 사모하여, 자연스레 그분의 삶을 이끌어가도록 두었다고 합니다.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에서 이런 복음의 원리가 잘 녹아 있는데, 우리 아이들 역시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것 못지 않게 예수님을 따르도록 지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③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이 변화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다가올 앞으로의 환경은 우리가 겪은 신앙 환경과 달라질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다양한 환경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신앙을 희석시키고, 변질되게 만드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는 첫 사랑의 자리를 경험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이 헷갈릴 때 이 날을 기억하며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신앙은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변질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꼼수나 악마적인 생각들로 대신 채우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늘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살도록 여러 번 교훈하셔야 합니다. 사랑과 믿음을 잃는 순간 괴물이 된다는 사실을 각인시키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세상은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훔쳐갈 것입니다. 그래도 끝내 이겨내도록 반드시 이 사랑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3. 여름성경학교와 한빛회 수련회의 주제 ‘희년’과 ‘헌신’

이번 여름 교육행사는 모두 희년과 연관이 있습니다. 희년은 하나님의 은총과 용서, 화해를 담고 있는 제도입니다. 인간이 땅 위에 줄을 그어 내거 네거 나눌 때 희년은 이 모든 땅과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도록 하기 위해 세워진 제도였습니다. 따라서 희년의 뜻은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이 모두 하나님의 다스림 앞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뜻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헌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헌신 역시 희년의 정신으로 각오해야 합니다. 내 시간, 물질이 아니라 이 순간만이라도 내 모든 것이 아버지 것이오니.. 아버지께서 마음껏 사용하시고 주장하옵소서..라고 믿음으로 자신을 내려놔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회학교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에게는 일년 중 특히 이 여름행사가 갖는 의미가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오니.. 주여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 스스로가 이런 믿음의 훈련을 하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능력도 나타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고, 그야말로 희년을 누리는 교회학교가 되도록 힘쓰셔야 합니다.

 

나가는 말

오늘 본문은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몸은 죽어도 그 다음은 어찌 하지 못할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우리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 하나님 백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를 키워내는 것! 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공중 나는 새 두 마리도 땅 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야말로 절대적으로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

요약하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도록 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과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자 소원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꿈은 올바른 방향을 가질 때 힘이 붙습니다. 꿈은 하나님이 인정할 때 날개를 달고, 꿈은 지금 주어진 삶을 안정적으로 가꿔나갈 때 더 멀리 날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꿈을 부어주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꿈대로 살도록 지지해주는 보혜사의 사역인 것입니다. 오늘 이 꿈을 나누고 자라게 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끝..

 

Posted by 돌짝
, |

내가 하리라 그러니 너는 가라(출3:6~10/마10:16~20)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가난한 한 가장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그 가장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제발 제가 부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정을 잘 살펴보신 후 그를 도와주기로 결정하시고, 그에게 정직하고 사업 수완이 좋은 사업가를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업가의 말을 듣지 않고, 욕심을 내는 바람에 결국 돈을 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복권에 당첨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해 다시 가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기꾼이 그 가장에게 붙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기꾼은 그 가장을 꼬드겨서 처음에는 많은 이윤을 가져다 주면서 그의 환심을 샀다고 합니다. 그때서야 가장은 신이 나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제가 이제 부자가 되나 봅니다. 이번에는 복권도 안사고 정말 성실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사기꾼은 그 가장의 명의로 더 많은 돈을 사기를 쳐서 도망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저는 이 가장의 기도 어디에서도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선대를 잘 관리하지도 못함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의 변하지 않을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들이 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의 고집으로 일을 그르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는 있으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삶. 하나님을 결코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이 바로 그 가장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께 묻고 듣는 입과 귀가 열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결코 어떤 상황도 나아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1.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만남

오늘 같이 읽은 본문에도 사람이 늘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삶을 살아가던 중 기적 같은 일을 만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타는 덤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 사건은 평범한 모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밀어내었으며, 무엇보다 일상의 삶을 거부하는 강력한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을 읽는 신자들이 그저 신비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면서도 정작 그 만남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이 변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만나면 뭔가 신통한 능력을 얻게 될 줄로 착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신비’에 있지 않고, ‘우리의 삶’에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초원의 한 촌부를 찾아오셨을까요?”

그리고, 왜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을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계실까요?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 받은 은혜에 대해서는 많이들 나눴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에 앞에 자신을 세워 본적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셨을까요? /쉬고

적어도 본문은 그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의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①먼저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동안의 삶이 아닌 특별하게 바뀌게 될 삶으로 초대했다는 사실입니다.

②그리고 두 번째는 모세 역시 삶의 돌파구를 만들어 줄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매일의 변화 없는 삶 가운데에서 실은 감춰져 있는 더 많은 가능성에 대해 목말라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런 특별한 순간에 일어나는 첫 번째 사건은 역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대단히 구체적으로 스스로를 나타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매우 구체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6절입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이 선언에 “나는 사라의 하나님 리브가의 하나님 라헬의 하나님이라”덧 붙일 수도 있었니다. 그러나 옛 조상들의 이야기들에 나오는 바로 그 하나님. 즉 절망에 빠졌던 옛 백성에게 다가와 그들에게 자녀를 주고, 새 삶을 허락하셨던 그 하나님. 방랑하던 유랑민들과 동행하고, 아무것도 아닌 인생들과 기꺼이 짐을 나눠지길 원하셨던 그 하나님. 요약하면, 삶의 모든 가능성이 닫혀서 열리지 않는 인생들에게, 기꺼이 새로운 기회와 변화를 주신 하나님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춰진 가능성을 열어주시는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과 환경만을 탓했던 사람들이 드디어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덤불 이야기는 인생이 거듭나는 즉 삶의 관점이 바뀌는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쉬고/

 

2. 삶의 관점이 바뀌면

돌아보면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좌절과 불신앙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해방하고 신음하는 피조물들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했지만,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안에서조차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던 거대한 약속을 믿지 못했고, 믿음 안에서의 결단이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습니다.

꿈꾸는 사람은 없고, 오직 현상 유지만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 교회를 병들게 하지만, 누구도 쉽게 하나님 앞에 나서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도의 분량이 부족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순수함이 매말랐습니다.

다시 기도해야만 합니다. 다시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변화를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 인내하는 신앙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젊은이들과 장년들이 이 믿음의 분량을 채울 수 있도록 교회의 모범을 세워가야만 할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 없이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늘 똑같은 현실만 반복될 뿐. 믿음 없는 신앙은 늘 믿음 없는 결과만 낳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모세가 만났던 불타는 덤불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불을 다시 켜야 합니다. 날마다의 말씀생활을 통해 자신의 삶의 ‘문제 있음’을 발견하셔야 합니다.

이와 같은 노력은 모두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숨겨져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을 해방에 참여시키라고 부르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불안과 가난과 저주, 믿음 없음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문제의 해결이 바로 지금부터 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7~9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그리고 9절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만나고 있는 바로 지금, 애굽 땅에서 고통 받고 있는 백성들의 현실 가운데 그를 초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대면’에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금의 삶의 문제점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대부분 바쁜 일상 가운데 외면당합니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에게 자녀들의 훈육 문제는 어떨까요? 조금 더 신경써주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하나님께 빕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러나 이 아이들이 어떤 아이로 자랄지는 불 보듯 뻔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는 것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갖는 영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장 보이지 않는 열매들 때문에 늘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실테지 라며 외면합니다. 그러다 기도불이 완전히 꺼지고 나서는 더 놀라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아무 일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지 결코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은 아닙니다.

 

3. 진짜 삶으로의 초대

저는 여러분이 이 시간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진짜 삶과 그 가능성을 돌아보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외면했던 실은 참다운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촌부에 불과했던 모세가 하나님을 통해 비로소 발견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자기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고통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을 구하라는 새 인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모세가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되었듯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많은 꿈과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무심코 소비하는 1~2만원을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아프리카 아동들의 한 달 치 교육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병원에서 수술을 무사히 마친 환자가 수술 전에 ‘하나님께 모든 과정 가운데 선한 결과를 보여달라고 기도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그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낮은 마음으로 듣고 섬기는 자세를 회복하면 어떻게 될까요? 교인들은 자연히 이들을 칭찬할 것입니다. ”

“모든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는 점차 예배가 자신의 삶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깨달아 갈 것입니다. ”

“참 다운 삶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 밖에서 여러분의 삶의 이유를 발견하도록 유혹하지만, 여러분이 마귀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 곧 죄악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목회자가 죽어가는 교회나 성도들을 보고도 ‘오늘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가게 해주심을 감사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또 성도가 자신의 기업과 영혼이 무너져감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의 기업과 영혼은 누구에게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참다운 삶으로 초대하길 원하십니다. 눈을 떠서 주변을 바르게 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말씀입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내가 하리라! 그러니 너는 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스러운 해방의 하나님 사건이 이제 갑자기 사람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임마누엘 곧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란 바로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삶으로 변화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시길 바랍니다.!)

 

4.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라

마지막으로 오늘 읽은 복음서 말씀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이제 제자들의 사역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경험한 제자들은 주의 일을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험했다면 주의 일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이 일은 때로 저와 여러분에게 ‘위험한 도전이나 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낼 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속에서 성령께서 역사할 것이다. 란 마태복음10:20절의 말씀 역시 사실입니다.


나가며

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부정하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일상의 가치를 드러나게 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세나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제자들과 같이 그저 현상유지나 버티는 삶들에 속아서는 곤란합니다. 성령님은 제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성령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사모하십시오. 그리하면 나머지는 그분께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니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끝..

Posted by 돌짝
, |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 실린 박상돈님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1. 서론

교육의 현장은 있으나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탄식하는 우리네 교육 현실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다시한번 음미하고 그 참된 방향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일환으로 근대 우리 민족주의 교육사상가를 연구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강 이승훈은 우리 민족이 고통받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속에 나라와 민족과 교육을 위한 사랑의 화신이며 구원의 청년으로서 쉼없이 향상하고 끊임없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여 敬, 愛, 聖을 실천한 구현자로서 평가받는 인물로서 그의 삶과 교육사상을 통해 우리 교육의 본질과 방향성을 깊이 고찰해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2. 남강 이승훈의 생애

이승훈은 1864년 3월 25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인환, 자는 승훈이며 호는 남강이다. 빈한한 서민 집안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16세에 유기상의 점원이 되었으며 10여년 동안 유기행상·공장 경영 등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국내 굴지의 대실업가로 성장하였다. 그는 공장경영방법을 개선하여, 노동환경을 일신하였고, 근로자의 신분이나 계급에 구애됨이 없이 평등하게 그들을 대접하여 근로자들의 생산능률은 향상되고 품질도 좋아져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국제무역회사를 세워 세계무대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한국 최초의 국제투자를 시도하였는데,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로 파산하게 되었다 이후 시골에 칩거하면서 늦게나마 면학의 길을 찾던 중 1907년 7월 평양에서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 난 뒤 교육을 통해 민족을 구하여야겠다는 굳은 결심 아래 금연·금주와 단발을 결행하고, 안창호가 조직한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평양 에 돌아와 서당을 개편하여 신식교육을 가르치기 위한 강명의숙을 설립하고, 이어서 이해 11월 24일 중등교육기관으로 오산학교를 개교하여 교장이 되었으며 1910년 기독교 신자가 되어 학교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운영하게 된다. 사실 당시 그 창망하던 시기에 조정의 힘이나 선교회의 힘이 아니고 장사하던 사람의 힘으로 민족의 간부를 양성하는 신교육기관을 세운 것은 놀라운 이적이었다. 결국 이승훈을 통해 오산학교는 민족교육의 산실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는 1911년 5월 안악사건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9월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로 압송, 4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루게 된다. 하지만 그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계속되어 1915년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하는 한편,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가출옥, 곧 이상재, 유진태 등과 함께 조선교육협회를 창립하여 전국의 사학교육을 지도하는 등 계속 그의 뜻을 펴나갔다. 그리고 1924년 동아일보사 사장에 취임, 물산장려 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을 추진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열린 강연회를 통하여 시국강연을 하였으며 26년 오산학교 초대 이사장을 지내면서, 이상촌 건설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사장에 재직 중 67세를 일기로 그의 생을 마치게 되었는바 오산학교에서 사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루게 되었다. 그리고 고인이 된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3. 남강 이승훈의 교육사상

1) 민족교육 진흥사상

남강 이승훈의 대표적인 교육사상은 교육을 통한 민족진흥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한말 국권회복운동은 무장투쟁노선과 실력양성운동 노선을 각 채택한 의병운동과 자강운동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특히 자강 운동이란 한국 민족이 주체가 되어 교육과 실업을 진흥함으로써 경제적, 문화적인 실력을 양성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을 달성하자는 운동이였다.
결국 이러한 자강운동은 애국계몽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남강은 이러한 계몽운동에게서 큰 영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을 민족 진흥운동에 헌신하였는바 교육을 통해 이러한 진흥이 발현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교육진흥사상은 1907년 오산학교 개교식에서 언급한 그의 연설문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금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데 우리가 그저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총을 드는 사람 칼을 드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긴중한 일은 백성들이 깨어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떠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있으니 그들을 깨우치는 것이 급무이다"

사실 그의 이러한 교육진흥사상은 도산 안창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며, 1907년 그의 생을 뒤바꾸어 놓은 평양에서의 안창호의 강연 역시 교육진흥론에 관한 것이였다. 당시 안창호는 물고기를 바로 잡으려면 먼저 그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후진들을 새교육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이 나라를 구하는 첫째 방법이라고 역설하게 된다.
이러한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 크게 감명받은 남강은 강연이 끝난 후 안창호와 함께 나라의 장래와 교육의 일을 놓고 심도깊은 논의를 하면서 이승훈은 그의 평생 교육진흥사상을 통한 민족 계몽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훗날 당시 안창호와의 주고받은 대화를 "잊을수 없는 감격의 순간이었다”라고 회고하였다 하니 그 순간부터 꿈틀거림은 일단 뜻을 세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우리가 살아갈 길은 교육을 통하여 힘을 길러 나가는 데에 있다"는 말을 언제나 외우고 다녔으며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이후 그의 다짐대로 교육자로서의 일관성있는 삶을 끝까지 실천하게 되는데 그의 마지막 유언이 "낙심하지 말고 겨레의 광복을 위하여 힘쓰라,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학 표본을 만들어 학생들을 위해 쓰게 하라" 였다고 하니 자신의 삶을 끝까지 다할때까지 민족을 위한 그의 교육진흥사상은 매우 투철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는 민족의 진흥을 위해 신학문을 도입할 것을 결심하였으며 처음세운 강명의숙에서부터 신식교육을 가르치게 하되 처음부터 과목은 산수. 체조. 수신. 역사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 거의 모든 학교들이 전통적인 구교육이였는바 그는 교육내용을 일신하여 다른 민족사학들과 함께 서양식 교육내용, 즉 자연과학 과목(물리, 화학, 생물, 수학, 산술 등)과 사회과학 과목(법학,경제학, 지리, 역사, 정치학)을 도입하였던 것이다. 이는 부국강병을 위하여 시급히 요청되었던 당시의 시대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그의 교육진흥사상으로 말미암아 오산학교는 독립운동의 산실이 되었으며 졸업생들의 면면 역시 주로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상가, 종교인 등으로 일제와 결탁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되었으며 독립운동의 핵심 지도자들로서 세워졌던 것이다. 한마디로 남강의 일생은 민족진흥과 애국운동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 일관성있는 삶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그에게 있어서 민족회복을 위한 이상이였고 통로였던 것이다.

2) 기독교 교육 사상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나라를 빼앗긴 것에 대해 몹시 괴로워하던 남강은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한석진목사의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 큰 감동을 얻게 되었다. 그후 그는 학교로 돌아와 교직원과 학생들을 모아놓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학교에서 신앙집회갖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민족 전체가 다시 힘을 얻고 하나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헌신, 봉사,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정신으로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해 12월 학교의 교육주지를 기독교 사상에 근거하여 바꾸면서 라부열(Slacy L. Robert)목사를 교장으로 추대하고 성경과목도 가르치게 되었으며 특히 나중에 교장이된 유명모 선생과 조만식 선생은 오산학교의 신앙교육터전을 튼튼하게 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비록 1922년 일제의 신교육령에 의거하여 1923년 11월에 기독교 교육주지는 삭제되고 일반학교가 되었으나 학교안의 신앙집회와 기도하는 분위기는 계속되었으며 신앙적인 모임과 예배를 통해 더욱 친밀한 동료의식속에 생활하며 아침저녁으로 찬송가 소리가 학교를 메아리쳤다고 전해진다.

한편 남강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경,애,성(敬愛誠)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았는바 하나님을 공경하고 스승을 공경하며(敬),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며(愛), 진실하고 성실하게 거짓이 없이 사는 삶, 또 이를 따르는 학생들을 기르는 것(誠)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게 되는데 이것은 오산학교의 교훈인 '사랑, 정성, 존경"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그가 강조한 의(義)의 교육은 기독교 사상에서 잘 나타나는데, 교육과 관련된 신앙의 형태로 이를 강조하고 의가 아닌 거짓이나 게으름이나 이기심이나 권모술수나 아집을 버리고 항상 큰뜻속에서 행하고 배우고 생활하도록 가르쳐 준 것이다. 남강은 자주 성경을 인용하여 훈화를 하였는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교훈은 훗날 졸업생들로 하여
금 개인생활에 있어서 정직하게 함은 물론 일제와의 투쟁에 있어서 강건한 민족애를 발휘하도록 다그친 것으로 볼수 있다. 이런 교육을 통하여 졸업생들은 개인의 출세나 영달보다 남을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도록 하는 헌신과 봉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또한 의라는 것은 남에게 짓밟히고 끌려다녀서는 안되며 모두가 덕스럽게 사는 것이 공의임을 배웠던 것이다. 결국 남강은 그의 교육의 방향성을 기독교 사상으로 귀결시켰기에 기독교 교육을 실천적으로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3) 실천교육 사상

남강은 어려서부터 남의 심부름꾼이 된즉, 주인이 시키기를 기다릴 것 없이 자신의 일을 실천적으로 성실하게 감당했던 사람이였다. 그리고 지금도 남강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20년 동안 그는 또 죽고 또 살고 또 살고 또 죽었다. 이십년간구생구사(二十年間具生具死)”그가 늘 강조했던 것은 할 일이 있는 사람에게 게으름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에서는 “이따가”란 말이 나온 일이 없다.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본 일이 없고 하품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가 예순이 지났어도 언제 몸을 찌그리는 일도, 다리를 뻗고 버둥버둥하는 일도, 대낮에 낮잠을 자지도 않았으며 삶이란 개인이거나 나라거나 밑져서는 안되는 그런 것이었고 할 것은 반드시 하자는 실천적인 인물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실함은 그가 가꾼 교육현장에도나타나게 되어 실천교육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는 학생들에게 교육지식이나 이론을 가르친 적이 없지만 오산의 많은 졸업생들은 남강을 통해서 배운 체험과 가르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교육자 남강을 그리워한다.
그는 특히 사람이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큰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극히 예사로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뜰을 쓰는 것, 각각 자기방을 치우는 것, 교실을 깨끗이 쓸고 정돈하는 것 등 이 모든 작아보이는 실천적인 일이 실은 나라를 사랑하는데 통하는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날마다 몸소 실천하였는데 특히 교실청소, 자기방 청소, 화장실 청소는 언제나 솔선하였고, 특히 남들이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는 옥(獄)중에서도 도맡아 했다. 학교의 설립자이면서도 학교 화장실의 얼어붙은 변을 손수 도끼로 깨고 청소했다는 일화는 바로 이런 실천교육의 표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가 늘 주장했고 실천했던 '사사교육 처처교장(事事敎育 處處敎場)'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실천궁행의 교육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매사에 진실할 것을 마음먹고 교육의 현장속에서도 실천하였는바 마음과 몸을 다하여 일하여서 대중의 신망을 받는 지경에 이르는 진실한 진인이 될 것을 강조하면서 실천하는 교육자였던 것이다.

4) 산업교육 사상

남강의 실천교육사상은 산업교육 사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그가 어렸을적 유기상의 점원에서 유기행상·공장 경영 등으로 대실업가로 성장했었던 과거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 남강은 민족의 자생을 위해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힘은 산업의 힘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철도를 깔고 항만을 만들고,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낸다면 힘이 생기고 그 힘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또한 당시 때마침 덴마크 교육사조가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는데 덴마크에서 그룬드비히에 의한 국민고등학교 교육이 나라를 일으켰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직접 덴마크를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교육의 성과가 보고되었던 것이다. 또한 도산 안창호도 우리에게는 정신과 함께 기술이 필요하며 남녀노소가 1인 1기를
습득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물건을 만드는 일이 소중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에 도전을 받는 남강은 소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실천주의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덴마크의 교육사조를 따라 농민학교와 공동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강은 오산학교와 신천농민 학교간의 자매결연을 추진하면서 학교재단이 경영하는 직조공장과 제사공장과 연계하여 오산일대를 새로운 교육도시로 만들기로 계획한후 농촌과 도시가 연결된 전원도시로서 오산에 학교와 교회와 도서관을 중앙에 두고 공장이 교외에 위치하며 그 사이를 푸른 마을로 메꾸는 일을 진행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교회, 학교, 산업을 공동전선으로 파악하고 서로 유기적인 교호작용에 힘을 집중하여 교회를 통해서는 민중의 신앙을 깨치고, 학교를 통해서는 교육을 일으키며, 산업을 통해 나라를 근대화하는데 삶의 목적을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산업교육사상에 근거한 구체적인 종합계획은 결국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비전은 지금도 우리곁에 숨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평생 교육 사상

남강은 어릴때에 조금 배운 한학외에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가르쳐 달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고, 실제로 남강보다 사회경험이 적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일지라도 항상 그들에게 배우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들이 많다. 또한 52세의 나이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수학한 것을 보면 그의 향학열과 교육에 대한 자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신구약, 교회사, 교리문답, 설교학, 교회법, 한국사, 서양사 등을 배웠으며 거기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오산학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영적 지도자가 될 것을 믿어 한사람 한사람을 성심껏 대하고 지도자로서의 품격을 갖추며 살 것을 당부하면서 함께 공부에 정진하게 되었다. 특별히 그의 '의' 사상은 신학교때 부지런한 학습을 통해 터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구약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굳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의를 향하여 "나음 나음 나아가라" "점진적으로 나아가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나갈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결국 계속해서 배움에 대한 노력을 늦추지 않고 부단히 배우며 살았던 그를 향해 사람들은 만년청년이라고 일컬었으며 쉬임없이 향상하고 끊임없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며 배우고 구현했던 인물로 지금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평생 학습인으로서 겸허하게 학습하는 생활로 일관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결 론

교권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남강의 교육 사상과 그의 실천적인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며 지금도 우리를 향해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하겠다. 남강이 지녔던 교육 진흥사상, 기독교 교육사상, 실천교육 사상, 산업교육 사상, 평생 교육 사상은 지금도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상적 준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실천인으로서 그 평생의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진실되게 헌신했던 남강 이승훈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들을 깊이 반추해 볼 수 있을 뿐만아니라 그것을 통해 교육자로서 우리들이 어떻게 준비하며,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교육적 삶의 방향성을 얻게 된다. 만약 우리가 성실했던 교육자 남강의 삶을 전인으로 배우고 따를 수만 있다면 우리의 교육의 장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들은 분명 맺혀지게 될 것이다.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임감에 관한 예화1  (0) 2014.08.12
Posted by 돌짝
, |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